MBC 올림픽 개회식 ‘참가국 모욕’ 자막, 리허설서 다 보고도 통과시켰다
고개 숙인 박성제 MBC 사장
MBC가 도쿄 올림픽 개회식 중계 때 참가국을 모욕하는 자막과 사진을 올리는 과정에서 담당 책임자들이 이를 보고도 통과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중계 내용인데도 리허설에서 이를 다 지켜보고도 그냥 방치했다는 것이다. MBC의 보도·제작 시스템이 총체적으로 무너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MBC는 이번 개회식 중계 때 우크라이나는 체르노빌 원전 참사가 난 나라, 아이티는 폭동과 대통령 암살이 일어난 곳, 루마니아는 드라큘라, 엘살바도르는 비트코인의 나라로 소개했다. 올림픽 정신에 위배될 뿐 아니라 외교적 결례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뉴욕타임스와 CNN 등 주요 외국 언론들은 MBC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MBC 박성제 사장은 사과 기자회견에서 조직 개편 과정에서 올림픽 중계 업무가 자회사로 넘어가면서 생긴 일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아무리 자회사가 중계 제작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 같은 사진과 자막이 그대로 방송될 수 있느냐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MBC 보도·제작 책임자들이 어떻게 사전에 걸러내지 못했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MBC 노조와 관계자들에 따르면 올림픽 중계와 관련한 제작진이 사전에 이 개막식 중계 자막과 사진 등을 미리 다 본 것으로 알려졌다. 사전에 리허설을 갖고 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는 것이다. 그런데 리허설에 참여한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참가국을 모욕하고 ‘디스’하는 자막과 사진에 대해 잘못됐다거나 고쳐야 한다고 지적하지 않았다고 한다. 올림픽 정신에도 맞지 않고 상식에도 어긋나는 내용이 아무 지적도 받지 않고 무사 통과된 것이다. 언론사인 MBC 내부의 데스킹 기능, 사전 검증, 통제 기능이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는 얘기다.
MBC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중계 때도 참가국을 ‘디스’하는 내용의 자막과 사진을 내보내 방심위에서 법정 제재를 받았었다. 당시 MBC는 사막 국가 차드를 아프리카의 죽은 심장이라고 표현하고, 수단은 내전 국가, 짐바브웨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의 나라라고 했다. 또 아프리카의 가나를 소개하면서 이스라엘 가나로 오인해 예수님이 기적을 행한 곳이라고 했다. 사실관계도 틀린 엉터리 중계를 한 것이다. 이래서 당시 문제가 됐고 징계까지 받았는데, 13년 만에 다시 똑 같은 잘못을 저질렀다. 결국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보도·제작 시스템에 근본적 문제가 있고, MBC 간부들과 제작팀원들의 사고 방식도 왜곡돼 있다는 지적이다.
제대로 된 조직이라면 오류를 시정하고 잘못을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MBC는 개막식 중계 사고가 난 이틀 후에 또 다시 자막 사고를 냈다. 한국과 루마니아의 축구 예선전에서 루마니아의 마린 선수가 자책골을 넣자 ‘고마워요 마린’이라는 자막을 넣은 것이다. 자책골을 넣은 선수를 사실상 조롱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과거 월드컵에서 자책골을 넣은 남미의 한 선수는 조롱과 비판을 받다 총격을 당해 사망했다. 자책골을 넣었다고 방송사가 이런 자막을 내보내는 것은 스포츠 정신에 어긋날 뿐 아니라 절대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그런데 대형 사고 이틀 만에 또 다시 같은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개회식 중계를 담당했던 바로 그 자막팀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고 한다.
MBC 박성제 사장은 14분간의 짧은 사과 회견으로 이 사태를 넘기려 했다. 하지만 방송가에선 MBC의 근본적 문제를 고치지 않고선 이런 실수가 또 일어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최근 채널A 관련 오보와 경찰 사칭 취재 등은 잘못된 조직문화와 취재 시스템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채널A와 검찰 간의 ‘검언 유착’이 아니라 MBC와 여권 간의 ‘권언 유착’이 진짜 문제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런데도 MBC는 ‘검언 유착’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다고 발뺌을 하면서 자기들 잘못은 없는 것처럼 책임을 피하고 있다.
MBC는 이명박 정부 이후 끊임없는 내부 갈등과 반목으로 조직 자체가 비정상화돼 있다. 내편과 네편을 갈라서 서로 공격하고 차별하고 불이익을 주는 상황이다. 또 노조가 사실상 방송사를 장악해 보도·제작·경영을 좌지우지 하고 있다. 박성제 현 사장과 최승호 전 사장 모두 노조위원장 출신이다. 이러다 보니 보도·제작에서 납득하기 힘든 잘못이 생기고, 경영 실패로 대규모 적자까지 발생하고 있다. 사실상 공영방송이라고 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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