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의 잉여력

전남 진도, 1915년

herocosmos 2021. 2. 19.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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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의 섬, 진도

 

처음 진도에 가보았던 것이 제가 국민학교 4학년이던 1988년 이었습니다. 진도대교를 통과해 섬에 진입하는 바로 그 순간 길 양쪽에서 입구를 늠름하게 지키고 서있는 두마리의 진도개 동상을 바라보던 그때의 설레임이 생각납니다.

 

벌써 30년이 지난 과거의 기억이고 그때 진도의 모습이 어땠는지는 이제 기억조차 나질 않으며 그날 찍은 사진조차 남아있지 않습니다. 어렴풋이 제 기억이 맞다면 그때는 진도대교 양쪽을 지키던 진도개 동상은 흑백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흰색과 황색의 컬러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진도 입구를 지키는 진도개 한쌍

 

제 기억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 변화가 있었던 것인지..

불과 30년전이 그럴진대 100년전의 모습은 어땠을지 기억하고 있을 사람은 이젠 단 한명도 남아있지 않겠지요. 하지만 100년전 진도에서 찍은 사진은 우리의 역사 기록 속에 아직 남아있습니다.

 

1915년 일제강점기 제4차 사료조사에서 기록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열여덟장의 사진을 소개합니다. 조사한 사람은 일본의 고고학자이자 인류학자인 도리이 류조(鳥居 龍蔵)입니다. 과거사 문제를 떠나서 100년전 진도섬과 그당시 우리네 모습을 이렇게라도 지켜볼 수 있음을 좋은 마음으로 생각합니다.

 

 

 

진도의 여인들

 

사진을 찍으러 나오신 아주머니들의 표정과 자세에서 범접할 수 없는 포스가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 앞줄 왼쪽 두번째 분이 상당히 미인이셨을 걸로 생각됩니다. 앞줄 오른쪽 두번째 분은 가슴을 드러내고 사진을 찍었는데.. 예전에는 그랬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외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인 사진을 찍는데도 가슴을 드러내신걸 보면 그때와 지금 가슴 노출에 대한 인식이 정말 많이 변한 모양입니다.  

 

 

 

진도의 남자들

 

남자들한테는 제가 그닥 관심이 없어서...

 

 

 

소녀들의 강강술래

 

강강술래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썰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충무공께서 명량해전을 앞두고 부녀자들을 모아 "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 오랑캐가 물을 넘어온다)"를 외치게 하여 왜군에게 우리의 병력이 많은 것처럼 꾸몄다는 썰입니다. 명량해전이 벌어졌던 그곳이 바로 진도 울돌목이고 바로 이 소녀들이 그때 강강술래를 돌던 여인들의 직계 후예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보배의 섬 진도의 보물, 진도개

 

그래도 제 블로그가 명색이 진도개를 주제로 시작한 블로그인데 진도를 소개하면서 진도개가 빠지면 섭섭합니다. 1937년 처음 진도개가 천연기념물로 등록될 당시의 자료 사진은 이미 전부 찾아서 소개를 했습니다만 이렇게 또 하나의 보물같은 사진을 찾았습니다. 모리다메조가 진도에서 사진 기록을 남겼던 1937년보다 22년전인 1915년에 진도와 해남의 경계인 옛 우수영 터에서 찍힌 개의 모습입니다. 저 개가 살고 있었던 당시의 전라 우수영의 모습도 함께 사진으로 남아 있습니다.

 

1915년 당시 전라우수영의 원경(상)과 근경(하)

 

이전에 네이버 블로그에 이 포스팅을 쓰고 뜻밖의 주목을 받았었는데 민속학이나 고고학적인 관심이 아니고 바로 저 진돗개의 사진 때문이었습니다. 심지어 SBS 뉴스에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현존하는 사진으로 남은 자료 중에서 가장 오래된 진도개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이 사진을 공개하고 어떤 분이 사진에 좌측에 쓰여있는 글자인 大正 三, 六, 十二(대정 3년 6월 12일)를 근거로 1915년이 아니고 1914년이다라고 하셨는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915년 사료라고 발표했으니 저는 그냥 1915년으로 하겠습니다. 

 

 

 

진도의 지석묘

 

지석묘(支石墓)라는건 쉬운말로 고인돌을 뜻합니다. 전세계에서 발굴된 고인돌이 약 6만개 정도라고 하며 그중 3만개 정도가 한반도에서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반도의 3만개 중에서 2만개가 전라남도 지방에 집중되어 있는데 진도에도 정말 많은 고인돌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애써 찾은 18장의 사진 중에 열장이 넘는 사진이 죄다 고인돌로만 도배가 되어있는데 몇개만 골라 소개합니다.

 

고인돌하면 아무래도 "돌" 때문에 신석기 시대의 유적으로 답을 찍었다가 피를 본 수많은 학생들의 원혼이 떠돌고 있을텐데.. 청동기 시대 유적입니다. 혹시나 이 글을 보는 수험생 여러분들은 잊지말고 청동기를 찍으시기 바랍니다.   

 

 

 

진도 십일장

 

일제강점기까지는 매월 10, 20, 30일에 장이 열렸던 십일장인데 지금은 오일장으로 바뀌었습니다. 매월  4, 10, 14, 20, 24, 30일에 장이 열린다고 합니다. 원래 장터는 십일시교 오른쪽의 석교천을 따라 형성되어 있었는데 1914년 면사무소가 이전해오면서 안쪽의 갈대밭을 매립하여 현재의 장터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사진이 1915년이니 과거 장터의 모습인지 아니면 현재 장터인지.. 애매합니다.

 

저 어렸을 때만 해도 이렇게 바지 걷고 논에 들어가 모내기를 했기에 참 익숙한 모습입니다. 방학때면 외가집에 가서 일손을 도왔는데 저는 거머리가 무섭다는 핑계로 모내기 안하고 그냥 구경만 했습니다. 

 

 

 

진도의 제공소

 

제공소라는 곳은 제사를 모시던 장소라고 하는데 어떤 중요한 의미를 가진 장소였기에 일제가 기록사진으로까지 남겼는지는 솔직히 전통문화와는 거리가  나름 신세대인 저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제공소라는 곳이 우리 민족 문화에서 가지는 의미를 아시는 분은 설명 부탁드립니다. 네이버 블로그 시절 제 이웃이었던 사학 전공자이신 "땅곰" 님께서도 뭔지 모르겠다고 친히 답글을 달아 주셨더랬습니다.

 

 

 

저 제공소는 저도 첨보는 곳이네요...ㄷㄷ

몰라요... 역사라기 보다는 종교,미신에 가까운 이야기같은데ㄷㄷㄷ
고인돌은 잘압니다 ㄷㄷ

 

- 사학을 전공하신 땅곰님 댓글 중에서 -

 

 

 

금골산 오층석탑

 

저 금골산의 오층석탑은 대한민국 보물 제529호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현재의 금골산 오층석탑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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