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은 그냥 퍼온거. 예전에 썼던 글인데 요즘 할아버지 썰풀기가 유행인거 같아서 다시 써봄.)
본인 친조부께서는 해방 직후 미군정 시절 꼬꼬마 경찰이 되셨음. 그리고 6.25가 발발할 당시에도 서울에서 경찰을 하고 계셨음.
익히 알려져있다시피 6.25가 발발하고도 다음날까지는 서울시민 입장에선 별다른 현실감을 못 느끼고 있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고 함.
그런데 이틀째인가 사흘째 되는 날인가, 포소리가 가까워져서 불안해하는 와중에 갑자기 경찰관들은 몇시까지 어디로 모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고 함. 할아버지는 할머니께 별일 없을거라고 말씀하시고 집합장소로 가셨는데, 그대로 트럭에 경찰관들 싹 태워서 진작에 런한 정부 따라서 함께 남쪽으로 피난을 가버림.
전화도 없던 시절이니 할아버지는 할머니께 간다만다 말도 못하시고 어어 하다가 그렇게 가버리셨고, 그렇게 간 이후 서울을 인민군이 점령해버림.
혼자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 서울에 남아계시던 할머니는 '남조선 경찰 마누라'라며 인민군과 추종자들에게 끌려다니며 시달리셨지만, 말단 계급 경찰관 부인한테 딱히 뭔가를 뜯어내고 자시고 할건 없는지라 그래도 며칠 안 돼서 금방 흥미가 떨어졌다고 함.
그런데 국군이 다시 서울을 수복하고, 서울에 혼자 남아있던 할머니는 그동안 누가 밥먹여주는 것도 아니니 다른 서울시민들이 그랬듯이 인민군 치하의 서울에서 이런저런 행사나 작업에 동원되어 배급을 타 드시며 생계를 이어나갔는데
서울을 수복한 국군이 할머니를 끌고 가서 변절자라고 모질게 문초를 함. 오히려 인민군 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고.
인민군과 국군에게 문초당한 후유증으로 인해 할머니는 건강을 헤치시며 말년까지 이래저래 몸 성한데가 없으셔서 고생하셨고(그래도 칠순은 넘기셨음)
할아버지 입장에선 나라에 두번 배신당한 격인지라(말도 없이 할머니 두고 피난 보낼 때 한번, 수복 후 변절자로 낙인 찍을 때 또 한번) 경찰 공무원이라는, 나름 그시절 식자층이었던 할아버지는 충격을 받으시고 할머니 요양도 할겸 고향인 경북 산골짝 시골로 낙향하시어 농사지으며 사셨음.
그리고 손에 익지도 않은 농사일 다시 하시느라 고생하시고 집안은 찢어지게 가난했었고.... 그래서 큰아버지는 중졸이시고 아버지는 중학교 때까지도 공부 잘했지만 전액 국비지원 공고로 진학하심.
참고로 할아버지도 당연히 참전용사증(?)을 받으셨지만 보통 자랑스럽게 걸어놓는 다른 집들과는 달리 보기만 해도 화딱지가 나셨는지 그냥 장농에 처박아두셨고, 할아버지 작고하신 이후 유품들 태우면서 같이 태웠다는게 내가 아는 친할아버지의 엔딩임. (일찍 작고하셨기 때문에 나는 한번도 친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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