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보

회색빛 전쟁 : 동서 첩보전

gehlen 2015. 4. 28. 16:33

 

 

 

"히틀러는 유럽을 둘러싼 요새를 만들었으나, 지붕 덮는 것을 잊었다."
                               

                                                                    -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 1943년


 

1. 남의 눈에 눈물나게 하면 내 눈에는 피 눈물이 흐를 수도 있다는 실제 사례 : 전쟁 말기 연합군의 드레스덴 공습. 한때 독일 공군의 위력으로 전 유럽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독일도 마침내 그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1900년경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독일 도시 드레스덴의 전경

 

 

 

 

 

 

독일의 "교토"(KYOTO) 와도 같았던 드레스덴. 교토가 천운 (전쟁 전 교토를 방문하고 그 아름다움에 매료 된 미국 장관 스팀슨의 개인적 부탁이 작용했다고 함) 으로 전쟁의 참화를 비켜갈 수 있었던 반면 드레스덴은 전쟁 말기 생지옥으로 변하게 됩니다.

 

 

 

 

 

 

2.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독일이 과거 전쟁의 상흔을 애써 외면하며 부흥에 힘쓰고 있을때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제의 용사들"을 다시 끌어 모으는 한 남자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히틀러 휘하의 장군이었으며 "유럽에서 소련을 가장 잘 알고 있다"는 평을 받았던 정보의 귀재 라인하르트 겔렌.

 

군 정보부, SS, SD, 게슈타포 등등 악명높은 전범들이 속속 그의 휘하로 모여 들기 시작하는데 이때 그를 찾아온 사람중 한 명이 바로 스위스, 네덜란드에서 활동했던 SS 보안대 중위 출신의 하인츠 펠페 였습니다.

 

동서 냉전이 격화되던 시절이었지만 미심쩍은 과거를 가진 인물들이 공직에 대거 기용되자 사회 각계에서 비난이 거세게 일었지만 미국 CIA가 비용과 조직에 관여한 "겔렌 조직" (후에 BND가 되는) 의 수장 라인하르트 겔렌은 특유의 냉혹하지만 철저히 사실에 근거한 자료를 바탕으로 이렇게 대응합니다.

 

"우리를 넘보고 있는 동독 정보부도 과거 전범들을 기용하고 있습니다."

 

(서부 전선에서 영국군, 미군을 대상으로 전쟁 범죄를 저지른 서독 출신의 군과 정보 기관원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전후에 영, 미군의 추적 대상이 되어 체포 되고 재판을 받을 것을 우려 종전 후 혼란을 틈타 연고가 없는 동독으로 넘어 갔고 동독 정권에서도 이들 "전문 (고문) 기술자"들의 능력이 필요 하여 그들의 죄과를 눈감아 줌으로써 참으로 기이한 적과의 동침이 이루어 집니다. 이들의 존재는 동독으로 침투한 서방 측 정보원들이 체포되어 이들에 의해 잔인한 고문을 받으면서 드러나게 됩니다.

 

특히 SS출신들은 자신의 팔에 SS 출신임을 알게 해주는 문신을 새겼는데요. 고문을 받는 도중에 이를 눈여겨 보았던 정보원들 (지독한 직업적 근성 T T)이 동, 서독 상호간의 체포된 정보원 교환을 통해 귀환함으로써 그런 비밀들이 알려지게 됩니다. 이런 직업적 새디스트들에게 "이념"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새삼 알게 해주는 일화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현 행정부의 다른 어느 부서보다도 우리는 적은 비율 (전범 전력자와 일반인의 비율) 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증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까놓고 보면 너희도 다 미심쩍은 과거를 갖고 있으면서 우리들만 비난하지 마라 확 내가 아는 사실들을 폭로해 버릴까 보다." 겔렌이 이렇게 뻣뻣한 자세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수상 콘라드 아데나워와 미 CIA, 미 행정부가 뒤를 봐 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동유럽, 소련 관련 정보의 상당 부분을 겔렌 조직에 의존 하였음) 겔렌 조직의 카운터 파트인 서독 주둔 미군 G-2나 CIA의 좀 정의감이 있는 (과거 OSS나 서부전선에서 독일군과 싸웠던 전력의) 사람들 이 전범자들과 협조를 해야한다는 것에 불만을 제기하면 오히려 그런 말을 하는 미군측 고위 장성이 목이 날아가 버리곤 했으니 아무도 그의 독주 혹은 군림을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소리 없는 전쟁 : 서독에 라인하르트 겔렌이 있었다면 동독에는 "얼굴없는 사나이" 마르쿠스 볼프가 있었으니 ...........

 

(존 르 카레의 소설 속 주인공 MI6의 스파이 마스터 조지 스마일리의 숙적 "카를라" 가 바로 마르쿠스 볼프를 모델로 한 것이 아니냐는 말 이 있었으나 정작 작가 존 르 카레는 이를 부인했다고 합니다)

 

DIRTY WARS : 확실히 정보전에서는 한 수 위인 공산권측은 미진한 서방의 전범 처리 (저의 지난 독일 관련 글 참조) 도 스파이 포섭의 계기로 삼는데요. 그 수단이 된 것이 소련이 점령한 동독 측에 소재한 과거 제3제국 공공기관들의 방대한 문서고 였습니다. 특히 정보 기관들의 기밀 서류들에는 소속 부대, 부대원들의 갖은 악행들이 너무도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었고 예상되는 소련의 박해를 피해 서독으로 넘어간 동독 지역 사람들의 과거를 손에 쥐고 이제는 "선량한 시민이자 믿음직스런 남편, 자상한 아버지의 탈을 쓰고 살아가는" 과거 전범들을 협박하기 시작합니다.

 

전쟁 후 과거 제 3제국시절의 악행들이 미디어에 알려지고 지탄을 받게 되는 분위기에서 자신의 과거가 밝혀진다면 사회적, 인격적 사망선고를 받게 된다는 것을 아는 과거 전범들은 끊임없는 동독 정보부의 협박에 시달리며 결국 2중 첩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그중 몇몇은 체포 되거나 자신의 과거가 가족에게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해 결국 자살하는 자들도 나오게 됩니다.

 

 

 

 

THE MAN WHO KNEW TOO MUCH : 세기의 스파이 라인하르트 겔렌.

 

동부 전선의 정보를 책임지고 있던 독일군 정보기관의 책임자로 1944년 7월의 히틀러 암살 음모 (영화 발키리의 소재가 된) 에도 가담을 제안 받았지만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태도로 완곡히 거절하며 그 뒤를 이은 보복 선풍을 피해갑니다. (다만 그의 휘하 귀족 출신 부하장교들이 다수 가담 하는 것을 막지 않는 모호한 태도로 양다리를 걸침) 44년 말에 이미 패전을 예상하고 정보 장교 특유의 우직함으로 "눈치없이" 히틀러에게 동부 전선에서 서서히 후퇴하여 병력 손실을 막고 독일 국경내로 병력을 집중시켜 본토 방어에 집중하자는 건의를 하지만 이미 정상적 사고가 불가능한 히틀러로 부터 "패배주의적 사고에 찌든 자"라는 비난과 함께 정신 병원에 감금될 위기에 처하자 자신의 심복들을 동원 자신들이 갖고 있는 중요 정보들을 전부 마이크로 필름에 담은 후 바바리안 알프스 지역으로 도피 시골 마을의 호수와 야산에 이를 은닉하고 미군의 포로가 되기 위해 길을 나서게 됩니다.    

 

겔렌의 굴욕

 

구사일생으로 독일로 몰려드는 소련군을 피해 미군 포로가 되는데 성공하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그를 기다리게 되는데요

 

독일군 장교 특유의 권위 의식에다 대소 정보의 최고 권위자라는 자부심에서 어련히 미군 측이 그를 알아 보고 자신을 고위 정보 장교에게 데리고 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를 맞이한 것은 20살 남짓 한 남부 출신 미군 장교였습니다.

 

그의 계급과 병과에 아무런 흥미를 보이지 않는 심문자에 당황한 겔렌이 급기야 스타일을 구기며 다소 절박하게

"나는 미군 측에 중요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는 말을 하자 (^^)

 

포로가 된 독일군 장교를 경멸하며 내 뱉는 (무식해서 더 용감한) 미군 소위님의 말씀

 

"다른 놈들도 다들 그러더군 ! 다음 !" (T T)

 

이렇게 거의 잡범 수준의 독일군 포로들과 함께 수용되어 있던 그와 그의 부하들을 구해 준 것은 "소련군 측이 정보 장교 라인하르트 겔렌이라는 자를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다"는 미군 정보기관측이 입수한 첩보였고 방대한 정보의 보고 겔렌이 소련 측에 넘어가는 것을 우려한 미군은 뒤 늦게 그를 수용소에서 찾아 내어 아이젠하워의 정보 참모에게 그를 데려가게 됩니다.


3. 뛰어난 재능, 방첩의 귀재 하지만.....

 

마치 고기가 물을 만난 것 처럼 겔렌 조직에서 실력을 나타내 보인 하인츠 펠페는 승승장구 겔렌 조직안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진급을 거듭하여 서독 정보부의 대소련 방첩 분야의 수장이 되기에 이릅니다.

 

4. 마침내 드러난 그의 정체

 

그가 겔렌 조직에 발을 들여 놓은지 꼭 10년째 되던 1961년 그는 스파이 혐의로 체포됩니다. 그후 1963년에 재판을 받고 14년 징역을 선고받게 되지만 1969년 소련에 대한 간첩혐의로 체포된 서독의 학생 3명과 교환되어 동독으로 인계되어 자유의 몸이 됩니다.

 

그가 체포되자 그제서야 과거 그의 의심스러운 행동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게 되는데요

 

2차대전 말 그는 영국군에 체포되어 전쟁 포로 생활을 하던 도중 영국 정보부에 정보를 넘겨 주며 조기에 석방됩니다.

 

영국 정보부에 의하면 그는 이때부터 소련을 위해 일하는 이중 첩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았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했기에 더 자세한 조사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영국과 미국을 위해 일해야 하는 처지였지만 항상 서독의 동맹국인 미국과 영국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던 그의 행태도 그제서야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5.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 : 그의 동기는 ......

 

자신의 고향인 아름다운 드레스덴이 전쟁 말기 연합군의 대규모 공습으로 폐허가 되자 이에 원한을 품은 하인츠 펠페는 자신의 복심을 숨기고 그로서는 불구대천의 원수인 연합국을 위해 일하는 것처럼 가장하여 결국 영국과 미국이 지원하고 서독이 추진한 동독과 소련에의 요원침투작전 및 각종 고급 정보를 과거의 적국이었던 소련에 넘겨줌으로써 엄청난 피해를 야기하게 되었다는 것이 하나의 설명이고

 

결국 그가 꼬리를 잡히게 된 것은 다름아닌 그의 봉급에 비해 터무니 없는 소비 행태 (소련, 동독측으로 받은 돈으로 인해 가능했던) 였고 그의 전력 (동료를 팔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여러 번 주인을 바꾸는 그의 행태) 으로 보아서 앞에서 말한 설명은  그를 너무 미화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있었으니

 

누구도 그의 진정한 동기를 알 수는 없다고 하겠습니다.


6. 에필로그 : 악인이 더 편히 잠든다

 

그가 검거하고 나중에는 배신했던 수많은 다른 국적의 첩보원들이 참혹한 최후를 맞이 한 반면 악명높은 SS 방첩요원에서 서방 연합국의 하수인으로 민주주의 서독 정보부의 방첩 책임자에서 공산주의 동독 시민으로 변신을 거듭한 그는 2008년 5월 8일 90세의 나이로 독일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 당시의 분위기를 느껴 볼 수 있는 추천작 

 

 

 

 

 

 

이 소설에 등장하는 실감나는 주인공들인

 

히틀러 유겐트 출신에다 유태인을 싫어하는 동독 정보부의 실력자 문트와 그의 부하 독일계 유태인 피들러를 보면

역시 독일 주재 MI6 요원으로 활약했던 작가 존 르 카레 (독일 어문학 전공에다 영국군 정보 장교로 독일 전쟁 포로들을 심문했던 경험이 있음) 의 경험과 관련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이 바탕이 되어서 나온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전후 오스트리아 빈 (Wien)을 배경으로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음울하고 절망적인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걸작 "제 3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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