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軍… 잠수함 승조원 52% 유출, 매년 파일럿 120명 전역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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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5.03. 오전 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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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대한민국]
군 핵심 인력인 장교·부사관, 장기 복무 포기하는 추세 확대
격오지 수당 월 3만원, 경찰·소방관과 비교해도 열악한 수준
올해 예산안서 처우개선 일부만 수용… 첨단무기 누가 운용하나

최근 북한은 서울과 수도권에 대한 무인기 침투를 자행하였으며, 12월 31일과 1월 1일에는 초대형 방사포를 연이어 발사하면서 공세적 도발과 무력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탄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도록 지시하였으며, 보유한 핵무기들은 방어가 아닌 다른 수단으로도 사용할 수 있음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우리에게 노골적인 핵 위협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2023년의 안보 정세는 그 어느 때보다 험난하고 위태로울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안보 상황이 험난할수록 군의 역할은 중요해진다. 하지만 정작 2023년 군은 그 어느 때보다 내부적인 위기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군의 핵심 인력인 장교와 부사관 등 간부의 조기 전역과 장기 복무 포기가 확대되면서 전군에 걸쳐 인력 공백이 심화되고 있다. 후배들로부터 존경받고 귀감이 되던 선배들의 조기 전역은 단순한 병력의 감소를 넘어서 직업군인의 미래에 대한 회의로 이어지면서 이탈 속도를 더욱 가속하고 있다.

/그래픽=양진경

군 인력의 이탈 확대는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한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경제적 처우에 대한 불만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군인들은 업무 특성상 상시 교대근무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지만 야간 및 휴일근무 수당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휴일 근무를 온종일 하더라도 1일에 4시간, 1개월에 57시간이라는 상한선이 설정되어 있다. ‘공무원수당 등에 관한 규정’ 제15조 제4항에 따라 경찰이나 소방관과 같이 교대근무를 하는 공무원의 경우 ‘현업공무원’으로 지정하여 이러한 제한을 적용받지 않도록 하고 있지만, 정작 군인은 해당 사항이 없다. 군인 특성상 근무지가 열악한 경우가 많지만 격오지나 GP, GOP 특수지에서 근무하는 경우 추가로 지급되는 수당은 월 1만~3만원에 불과하며, 바다 위 전투함에서 근무하는 경우 지급되는 수당도 월 3만2000원에 머무르고 있다. 같은 제복을 입고 근무하는 경찰이나 소방 등과 비교해보면 열악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병력 대신 첨단 무기의 비율이 높아질수록 이를 운용하는 전문 인력과 간부의 비율은 확대되어야 한다. 군 계획에 따르면 2020년 군 간부 비율은 37.9%인데 2026년에는 40.6%로 높아질 예정이다. 하지만 현재의 군이 제공하는 처우와 미래 비전 등을 고려해볼 때 이와 같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육군 학군장교(ROTC) 지원 경쟁률은 2015년 4.5대1에서 2022년 2.4대1로 낮아졌으며, 육군 부사관 경쟁률은 2018년 3.6대1에서 2.9대1로 낮아졌다. 인구 감소 추세를 고려해보면 조만간 정원에 미치지 못하는 지원율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육군에 비해 더 높은 숙련도를 갖춘 인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해군과 공군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해군의 경우 잠수함 승조원의 유출이 이어지고 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712명의 인력을 양성했지만 368명이 이탈해 유출률은 51.6%에 이르고 있다. 고도의 전문성과 경험이 요구되는 잠수함 승조원 양성에는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지만 열악한 근무 환경과 이를 상쇄할만한 급여 및 지원 프로그램 등이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잠수함 승조원은 계속 이탈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잠수함 운용 노하우 역시 축적되지 못하고 있다. 공군의 경우도 여러 차례 지적된 바와 같이 조종사의 경우 독자적 작전이 가능한 임관 후 8~17년 차 조종사들 가운데 매년 120명 내외가 전역을 신청하고 있다. 조종사 이외에 정비사 등 관련 인력의 유출도 이어지면서 안정적인 군 전력 유지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현재 19년 6개월 이상 근무하고 퇴직할 경우 연령과 관계없이 퇴직 직후부터 연금이 지급되는데 이를 만 60~65세 이상으로 조정한다는 군인연금 개편 논의가 진행되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져 조기 전역 흐름을 부채질하고 있다. 군인연금은 이미 오래전부터 적자 상태이며, 이를 보존하기 위해 연간 1조6000억원가량이 투입되고 있어 개혁과 개편은 필요하지만, 퇴직금도 없이 장기복무 후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군 인력의 입장에서 보자면 미래는 더욱 불안해지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군 당국은 이와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2023년 예산편성 과정에서 부사관 지원율 하락 방지를 위해 부사관 임용 시 지급되는 장려금을 5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인상하였으며, 주택수당을 월 8만원에서 16만원으로 인상하는 등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대부분의 처우 개선 요청 사항은 예산 당국과의 협의 과정에서 수용되지 않았다. 병사 급여는 병장을 기준으로 할 때 2022년 67만6000원에서 2023년 100만원으로 인상되었으며 2025년에는 150만원으로 상향될 예정이지만 이에 상응하는 간부에 대한 지원 조치가 시행되지 않을 경우 향후 부사관 및 초급장교 등의 확보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우리의 전차와 자주포, 전투기 등이 유럽에 수출되면서 한국의 국방 기술과 방위 산업의 역량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12월 30일 밤 하늘을 밝힌 고체연료 추진 우주발사체의 모습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러시아 연해주, 중국 동북부, 일본 등 약 1000㎞에 떨어진 곳에서도 목격되면서 우리의 첨단무기 기술력을 주변국에 과시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첨단무기라 하더라도 그것을 다루는 인력이 없다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눈앞에 도래한 본격적인 인구감소와 노동력 부족 시대에 군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비전 제시와 가시적인 처우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안보 태세는 첨단무기를 쌓아놓고도 안에서부터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다. 안보의 시작과 끝은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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