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로 단속 강도 완화 등 원인
중국 불법어선 남획에 어민 생계 직격타
단속 나선 한국군‧해경 안전도 위협
정부, 서한‧면담 신청 등 소극적 대응 일관
"중국 심기 자극 우려하나" 지적도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역에서 불법 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의 수가 이달 들어 하루 평균 약 240척으로 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배, 코로나19 대유행 전인 2019년과 비교해도 2.6배로 늘어났다. 이런 갑작스런 급증은 한국 정부가 중국 정부를 상대로 이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냐는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NLL 인근 중국 불법 조업선은 대부분이 북한 수역에서 머무르다가 밤이 되면 우리 쪽으로 내려온다. 3~6월은 꽃게 성어기로 본격적인 꽃게 조업이 시작되면 매년 NLL 일대에 출몰하는 중국 어선의 수가 크게 늘곤 한다.
하지만 ‘4월 꽃게철’이라는 건 상수인데 올해만 유독 불법 조업선의 수가 늘어난 데 대해선 정부도 다양한 원인을 추정하고 있다. 우선 코로나19의 여파로 중국에서도 통관 절차가 엄격해져 수산물 수입이 과거보다 줄었고, 이로 인해 NLL 일대에서 불법 조업에 나선 선박 수가 늘었다는 설명이 있다. 코로나19 방역 문제로 중국과 북한 당국의 해상 단속 등이 전보다 소극적인 측면도 있다.
특히 최근의 단속 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새까맣게 떼로 밀려드는 중국 어선에 소수로 맞서는 해경 단속 인력은 그야말로 중과부적의 상황을 매일 직면한다. 정통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모든 불법 조업 어선을 단속할 수 없어 한두척만 나포하고 나머지는 밀어내는 식으로 겨우 버텨내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고속단정 침몰 사건 때처럼 중국 어선들이 힘을 합쳐 해경을 공격하기라도 한다면 심각한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후방에서 중국을 압박하는 적극적인 외교가 필요한 이유다.
이처럼 서해 어촌계의 타격 뿐 아니라 자칫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 계속되는데도 중국 측은 사실상 ‘배째라’식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문제 제기에도 일단 형식적으로는 수긍하면서도 “(불법 조업선은)우리도 사실상 통제할 수 없는 배들”이라며 “나름 열심히 단속하겠지만 물샐 틈 없는 단속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해명을 하는 식이다. 이에 더해 “불법 조업에 나서는 중국 어민들 중에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많으니 단속을 너무 심하게 하지 말라”는 적반하장식 요구를 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현지시간) 중국이 전 세계에 걸친 자국 어선의 불법 조업 행태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데 대해 “중국 어선을 통해 해양에서 중국의 존재감을 높일 수 있고, 더 나아가 국가발전 전략과도 맞물려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식량 안보를 담보하고 해양 이익을 지키겠다는 정책”이라면서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1일 중국 농업농촌부와 해경국에 “NLL 인근 중국 어선에 대한 강력한 조치를 바란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이어 지난 16일엔 주중한국대사관 해양수산관이 중국 농업농촌부와 해경국 관계자와 면담했다. 해수부 당국자는 “오는 6월 한ㆍ중 어업지도단속 실무회의와 10월쯤 열릴 예정인 보다 고위급의 어업공동위원회에서도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다른 주무 부처인 외교부는 지난 14일 한ㆍ중 해양협력대화에서 NLL 인근 불법조업선 문제를 거론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적극적인 대중 압박이 불법조업 감소의 효과로 이어진 경험이 존재한다. 2019년 1월 해경은 2016년 대비 불법 조업 건수가 급감했다고 발표하며, 유관기관 간 협업과 외교적 노력, 강력한 단속활동 등이 병행된 결과라고 풀이했다. NLL 인근 중국 불법 조업선의 수는 2016년 일평균 250척에서 2017년 200척 수준을 거쳐 2018년엔 50건까지 떨어졌다.
실제 2016년 고속단정 침몰사건 전후로 정부는 불법 조업 문제에 대해 중국에 적극적 문제 제기를 해왔다. 2016년에만 해도 중국 불법조업선 문제와 관련해 김형진 당시 외교부 차관보가 추궈훙 당시 주한중국대사를 총 세 차례나 초치해 항의했다. 사건 뒤에는 불법 조업에 대한 함포 사격도 허가하는 등 더 공세적 조치들을 취했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당시 사드 보복 때문에 한‧중관계가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와 별개로 이 문제는 매듭을 꼭 지어버리자는 분위기가 정부 내에 강했다. 우리 어민 피해는 물론이고 해양 경계 획정 등 영토 문제와도 직결될 수 있는 사안이었기 때문”이라며 “차관보가 주한 중국 대사를 불러 수차례 직접 이야기하기도 했고, 꼭 해양 이슈 관련 만남이 아니더라도, 또 급을 따지지도 않고 계기가 될 때마다 불법 조업 문제를 제기했다”고 말했다.
한ㆍ중 관계 개선에 방점을 찍느라, 껄끄러운 사안은 지엽적 문제로 간주하고 대화 테이블에 올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 교수는 “우리 어민의 권리를 침탈하고 향후 군사적 분쟁까지 야기할 수 있는 사안에서까지 정부가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뜨뜻미지근한 대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결국 매년 반복되고 갈수록 악화되는 중국 불법조업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간 고위급 외교 채널 등을 동원해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기범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NLL 불법조업 문제는 정치적 고려 없이 외교적으로 강하게 항의할 수 있는 영역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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