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의대 교수들 집단 사직서 제출 강행…"맡은 환자 진료 마친 후 수련병원과 소속 대학 떠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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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3.25. 오후 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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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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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 가까이 사직서 제출한 곳도…고대 의대 사실상 일괄 제출
"전공의와 교수가 없어 수술 적기 놓칠까 불안" 환자들 전전긍긍
◇25일 오전 서울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서 열린 ‘고려대학교 의료원 교수 총회’에서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속보="2차 병원에서 신생아를 데리고 대학병원에 가보라는데, 전공의와 교수가 없어 수술 적기를 놓칠까 봐 불안합니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국 의대 교수들이 집단 사직서 제출을 강행한 25일, 한 병원에서 출산한 A(39)씨는 출산 병원으로부터 의뢰서를 써주면 신생아를 데리고 대학병원에 가 검사를 받아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간질성 방광염의 정보를 교환하는 한 인터넷 카페에는 전공의가 없어 병원 예약을 할 수 없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한 누리꾼은 "방광염을 앓은 지 3년 정도 됐는데, 미세 혈뇨가 계속 보인다고 종합병원에 가라고 했다"며 "가까운 전남대 병원에 전화했더니 비뇨기과 의사가 없어서 '예약 불가'라고 하고 전북대병원에 전화했더니 '무기한 대기'라고 한다. (갈 병원이 없어) 곤란하다"고 토로했다.

25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 40개 의대 대부분에서 이날 소속 교수들이 사직서 제출을 시작했거나, 사직하기로 결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교수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국의대교수비대위)는 이날 성명을 내고 "오늘 사직서를 제출하겠다"며 "교수직을 던지고 책임을 맡은 환자 진료를 마친 후 수련병원과 소속 대학을 떠날 것"이라고 밝혔다.

성명에는 강원대, 건국대, 건양대, 경상대, 계명대, 고려대, 대구가톨릭대, 부산대, 서울대, 연세대, 울산대, 원광대, 이화여대, 인제대, 전남대, 전북대, 제주대, 충남대, 한양대 등 19개 대학이 참여했다.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다른 의대 교수들도 조만간 사직서 제출에 동참할 예정이거나,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교수들의 뜻을 모은 상태다.

순천향대 천안병원의 경우 이 병원에서 근무 중인 순천향대 의대 교수 233명 중 93명이 이미 교수협의회에 사직서를 낸 상태로 전해졌다.

이 대학 교수협의회는 이날 오후 병원 인사팀에 사직서를 제출할 것으로 알려져 사직서 제출 숫자는 추가로 늘어날 수 있다.

고대의료원 산하 3개 병원(안암·구로·안산)의 전임·임상교수들은 이날 아침 안암병원 메디힐홀·구로병원 새롬교육관·안산병원 로제타홀에서 각각 모여 온라인 총회를 연 뒤 단체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 25일 오전 서울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서 열린 ‘고려대학교 의료원 교수 총회’에서 교수를 비롯한 전공의 및 의대 학생들이 정부 의료 정책을 비판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총회에는 다수의 고대 의대 학생들도 참관했으며, 이들은 정부를 향한 요구사항을 함께 제창하기도 했다.

연세대 의대 교수들은 이날 오후 6시 의대학장에게 사직서를 일괄 제출할 예정이다. 연세대 원주의과대학에서도 교수 정원이 10명인 필수의료과목에서 8명이 지난주 사직서를 제출했다.

원주의대 교수평의회는 사직결의문을 내고 이날부터 27일까지 순차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결의문을 통해 "대한민국 의료를 바로 세우는 것이 의사이자 교육자, 그리고 국민의 한 사람인 우리 교수들의 책무이기에 원주의대 교수들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를 거부한 정부의 독선을 저지하고 다가올 정부의 폭압에서 전공의와 학생을 보호하고자 25일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자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가톨릭대의대 교수들은 26일 회의를 열어 사직서 제출 일정 등을 논의하며. 서울대 의대 교수들도 이와 관련해 저녁에 회의를 개최한다.

전의교협은 사직서 제출에 전국 40개 의대 중 "거의 대부분이 동참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교수평의회에 따르면 교수 정원이 10명인 일부 필수 의료과목에서 8명이 지난주 사직서를 제출했다.

충북 유일 상급종합병원인 충북대병원에서는 적지 않은 교수들이 이날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중국 충북대 의대 교수협의회장은 "정부가 의료계와 대화하겠다는 제스처는 취했지만, 2천명 증원이라는 터무니없는 숫자를 포기하지 않는 한 교수들의 집단행동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초부터 대학별 긴급 설문조사를 해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의견을 모은 충남대와 건양대, 아주대, 부산대, 전남대, 조선대, 원광대, 전북대 의대 교수들도 이날부터 예정대로 사직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 대학 의대 교수 비대위는 이날 오후 회의를 열어 사직서 제출 시기와 방식 등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다만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뒤에도 당분간 병원에 남아 진료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보인 만큼 당장 환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광주의 한 3차 병원 관계자는 "교수들이 집단사직하더라도 당장 진료를 중단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52시간 준수에 따른 근무 시간 감소에도 긴급 수술을 중단하거나 거부하는 교수들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선 '2천명 증원 백지화'를 주장하는 교수들의 반발이 여전히 거세다.

◇전공의 집단행동이 이어지며 의료공백이 장기화하고 있는 22일 대구 한 대학병원 접수대 앞에 의료진 부족으로 진료가 지연된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주대 의대 비대위 관계자는 "유연 처리를 모색한다는 정부의 입장 변화는 '3대 때릴 것을 1대 때리겠다'는 격"이라며 "근본적인 변화가 없기 때문에 상황이 달라진 것이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원광대 의대 비대위 관계자 역시 "대통령이 전공의들의 면허취소를 유연하게 한다고 하지만, 애초부터 면허취소는 겁이 나지 않았다는 게 전공의들의 분위기"라며 "2천명 증원을 철폐하고 재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교수들은 또 전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전국의대 교수협의회 회장단이 간담회에서 유의미한 접점을 찾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

충남대 의대 비대위 관계자는 "한 위원장의 의정 중재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나 2천명 증원에 대해 변화가 없다"며 "오늘부터 계획대로 교수 각 개인이 자율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협의회 비대위도 이날 성명을 내고 "오늘 울산의대 수련병원 교수 433명은 사직서를 제출한다"고 밝혔다.

울산의대에는 수련병원 3곳에 총 767명의 교수가 재직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528명, 울산대병원 151명, 강릉아산병원 88명 등이다.

비대위는 "2천명 의대 정원 증원으로 초래된 지난 한 달간의 의료 파행으로 중환자와 응급환자 진료를 담당하는 교수들의 정신적·육체적 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이어 "의대 정원 2천명 증원 안을 대학별 정원 배정으로 기정사실화한 것은 그동안 파국을 막고자 노력했던 교수들의 뜻을 무시하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가볍게 여기는 정부의 오만함"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파국을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교수직을 포기하고, 책임을 맡은 환자 진료를 마친 후 수련병원과 소속 대학을 떠날 것"이라며 "정부는 근거 없는 증원을 철회하고 진정성 있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현재 대학에 실제로 제출된 사직서는 아직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울산의대 교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긴급총회에서 전 교원의 자발적 사직서 제출을 결의하고, 3개 수련병원 교수들로부터 사직서를 모아왔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국 의대 교수들이 집단 사직서 제출을 강행한 25일,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의교협은 정부의 '의대 입학정원 확대 및 배정' 철회 없이는 현 사태 해결이 불가능하다며, 이를 먼저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전의교협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간담회 결과에 대해서도 "알맹이가 없고 공허하다"고 일축,정부가 2천명 증원을 백지화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요구했다.

전의교협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의한 입학 정원과 정원 배정의 철회가 없는 한 이번 위기는 해결될 수 없다"며 "교수들의 '자발적' 사직과 주 52시간 근무 등은 예정대로 금일부터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광대병원의 한 교수는 "어제 한 위원장과의 만남으로 대화의 물꼬가 트일 것처럼 보도됐지만, 교수들의 분위기는 다르다"며 "의대 증원에 대한 논의가 빠져 알맹이가 없고 공허한 이야기만 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예정대로 사직서를 강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의사들이 '2천명 증원' 철회를 촉구하며 사직서 제출을 강행하고 있지만, 정부는 2천명 증원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빠른 시간 내에 정부와 의료계가 마주 앉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말하면서도 "27년 만에 이뤄진 의대 정원 확대를 기반으로 의료개혁 과제를 반드시 완수하겠다"며 '의대 증원'은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세웠다.

다만, 교수들의 집단사직 움직임에도 '빅5' 병원 등 주요 병원에서 더 큰 혼란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오늘부터 외래진료를 축소한다고 했지만, 아직까지는 움직임이 없다. 수술은 50%가량 연기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교수들의 움직임이 가시화되려면 주 중반으로 넘어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도 "아직 사직서 제출 움직임은 없다"며 "외래진료도 전공의 사태로 기존 대비 20% 줄어든 상황 그대로다"고 전했다.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다른 대형병원도 외래진료 축소는 없다고 밝혔다.

당장 의료현장에 큰 혼란이 발생하지는 않고 있지만, 환자들의 불안감은 극심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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