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가 성추행할 의도 있었는지 살펴본 후…징계 수위 결정하는 것이 맞아"
"피해자 성적 수치심 느꼈다고 인정했을 뿐…어떤 신체 접촉인지 판단 안 해"
"성폭력 인정할 만한 다른 자료도 없고…고려해야 할 사항 누락해 내린 징계"
법조계에 따르면 인천지법 행정1-1부(이현석 부장판사)는 대학생 A 씨가 모 대학교 총장을 상대로 낸 징계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고 18일 밝혔다. 재판부는 지난 1월 A 씨에게 내린 '유기정학 3주' 처분을 취소하고 소송 비용도 모두 대학 측이 부담하라고 명령했다.
지난해 수도권 소재 대학교에 입학한 신입생 A 씨는 여름방학을 앞둔 6월 경기도 펜션으로 MT를 갔다. 그는 다음 날 새벽 펜션 인근 도로에서 술에 취한 동기 여학생 B 씨를 부축했다가 성추행범으로 몰렸다. B 씨가 닷새 뒤 학과 교수를 통해 학내 인권센터에 "성폭력을 당했다"며 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B 씨는 학교 조사 과정에서 "A 씨가 속옷 안으로 손을 넣어 가슴을 만졌다"고 주장했다. 2개월가량 걸린 인권센터의 조사 후 학내 성희롱·성폭력 고충 심의위원회는 당시 A 씨의 행위는 성폭력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심의위는 "A 씨는 저항할 수 없는 상태였던 B 씨의 동의 없이 신체 접촉을 해 성적 굴욕감과 수치심을 줬다"고 설명했다.
이후 징계 수위를 결정하는 학교 생활지도위원회도 "심의위 판단은 적절하다"며 A 씨에게 유기정학 3주 처분을 했다. A 씨가 다닌 대학의 학생 징계 기준에 따르면 성희롱·성폭력을 했을 때 행위 정도에 따라 제적, 무기정학이나 유기정학 3주, 유기정학 1주나 근신 등 세 가지 처분을 받는다.
A 씨는 자신은 B 씨를 성추행하지 않았는데 징계를 받으면 억울하다며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소송에서 "만취한 동기를 부축하려고 양쪽 겨드랑이 사이에 팔을 넣었을 뿐 성추행하지 않았다"며 "대학은 어떤 성추행을 했는지 판단하지 않고 신체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과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는 이유로 징계했다"고 주장했다.
법원도 대학 측이 징계하면서 A 씨가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했는지와 고의성이 있었는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며 징계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대학이 성폭력을 이유로 A 씨를 징계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했는지를 따져 (성추행) 의도가 있었다고 인정해야 한다"며 "이를 토대로 징계 수위를 결정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대학 심의위는 신체 접촉이 있었고 피해자는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인정했을 뿐 어떤 신체 접촉인지를 판단하지 않았고 고의인지 과실인지도 따지지 않았다"며 "성폭력을 인정할 만한 다른 자료도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대학 측이 마땅히 고려해 할 사항을 누락해 내린 징계"라며 "재량권을 남용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