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 말리려 책상 넘어뜨린 교사…검·경 '아동학대 판단'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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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5.03. 오후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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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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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 학대' 심사숙고 끝에 경찰 인정…검찰 무혐의
교권에 아동학대 적용 애매모호…교육계 또다시 숙제
광주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을 정서적 학대했다는 내용의 경찰 수사가 이어지면서 동급생이 검찰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2023.5.3


(광주=뉴스1) 최성국 기자 = 교실에서 벌어진 학생들의 싸움을 말리기 위해 책상을 넘어뜨린 교사를 학부모가 형사 고발한 것을 두고 경찰과 검찰의 판단이 엇갈렸다.

3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광주지방검찰청은 지난달 29일 아동학대 혐의로 송치된 광주 한 초등학교의 교사 A씨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A씨는 지난해 4월12일 학교 교실에서 급우와 싸우던 초등학생을 말리고, 훈계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훈육을 했다는 이유로 학부모로부터 민·형사상 고소를 당했다.

피해 학생의 학부모가 경찰에 제출한 고소장에는 'A씨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책상을 던진 행위, 학생을 복도에 세워두는 방법으로 처벌한 행위, 학생들 앞에서 잘못을 지적한 행위, 학생이 낸 반성문을 찢어서 날린 행위 등 5가지 행위로 자녀가 신체적·정서적 학대를 당했다'는 주장이 담겼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당사자들과 주변인 등으로부터 진술 조사를 진행했고, A씨가 피해아동을 신체적으로 학대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교사의 행위가 정서적 학대'에 해당되느냐 여부였다.

아동복지법상 정서적 학대 행위는 피해아동의 정신건강을 저해하거나 그럴 위험이 있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 때문에 아동정신 건강을 저해할 위험성이 있다면 학대 행위가 성립된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이 학생이 다른 학생과 때리며 싸우는 것을 말리고 훈계하려 책상을 넘어뜨렸다. 또 반성문에 잘못을 적지 않아 찢은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경찰은 가해자의 범행 당시 태도, 범행 후의 상태 변화, 행위의 경위 등을 토대로 고소장에 담긴 5가지 혐의 중 책상을 넘어뜨린 것과 반성문을 찢은 것이 정서적 학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나머지 3개 혐의와 아동학대 방조 혐의로 함께 고소된 해당 학교장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 아동 학부모가 고소한 내용을 종합적으로 검토, 대부분은 불송치 의견을 냈지만 일부 혐의는 교권의 재량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보고 검찰에 송치하게 됐다"면서 "정서적 학대 행위는 엄중하게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 앞으로는 학부모 고발에 대한 교육계, 학급 학부모들, 초등학생들의 탄원서가 쏟아졌다. 제출된 탄원서는 1800여장에 달했다.

교사들은 '제지하다 아동학대로 신고나 고소를 당할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의 싸움을 말리기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책상을 넘어뜨린 것은 다른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다', '즉시 학생들에 사과했는데 아동학대라니 안타깝다', '자기 행동을 돌아보지 않는 반성문을 쓴 학생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 것인가' 등 교권 붕괴 우려와 경위 참작을 호소했다.

해당 학급의 한 초등학생은 "선생님은 쉬는 시간에 너무 시끄러우면 조용히 하라고 말하셨고 싸우고 있는 친구가 있으면 잘 해결해 주셨다. 선생님은 아동학대를 한 적이 없다. 선생님이 아동학대를 했다면 우리 반 아이들이 다 알겠죠. 근데 우리반 아이들은 모르고 선생님을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그런 선생님을 졸업할 때까지 보고 싶다"는 탄원서를 써서 제출했다.

또 다른 학생은 "저희 선생님의 평소 모습은 항상 밝은 모습이고 저희반 친구들도 잘 가르쳤다. 쉬는시간에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 잘 들어주신다. 갑자기 헤어지게 됐는데 하루 빨리 만나고 싶다"고 탄원했다.

학부모들도 '적극적인 훈육에 벌어진 일'이라며 탄원 행렬에 동참했다.

전국 유사 사례들을 검토한 광주지검은 '정서적 학대' 판단을 위해 사건 당시 교실에 있었던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의견 청취까지 하기 이르렀다.

검찰은 경찰이 넘긴 자료들과 피해자 측, 당사자 측이 제기한 증거자료들, 탄원서, 학생 의견 등을 모아 심의위원회로 넘겼다. 다수의 위원이 참석한 심의위원회는 1명을 제외한 모두가 'A교사의 행동을 정서적 학대 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이와 별도로 학부모측이 A씨를 상대로 제기한 32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청구 민사소송은 진행 중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아동학대의 정서적 학대 범위가 상당히 확대되면서 현실에 적용하기 애매모호한 부분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사건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수사기관과 법원에서는 정서적 학대 행위를 신체적 학대 행위와 동일선상에 둘 만큼 엄중하게 다루기 때문에 참고인 등의 사실관계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도를 넘는 행위'라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범죄 입증 책임이 있는 수사기관으로서는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다. 관련 진술을 한 학부모와 학생들의 부담도 상당했을 것"이라며 "일선 교사나 아동들이 애매한 기준에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교육당국의 고심이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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