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고금리 신음, 은행원은 매년 성과급 잔치…4가지 원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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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3.13. 오후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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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훈의 경제TalkTalk] 서정의 한국은행 국장 ②/③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은행들의 과점과 고금리 장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해결 방안보다 더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금융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사진은 지난 3월 9일 서울 시내의 한 은행에 붙어 있는 전세자금 대출 안내문./박상훈 기자

☞ ①/③ 편에서 계속

금융제도 전문가인 서정의 한국은행 국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언급으로 은행의 과점 문제에 대한 공론화가 시작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그리고 국민들의 고금리 대출 부담을 줄이고 국가의 성장잠재력을 높이려면 은행업 진입 자유화라는 근본적인 처방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왜 이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독자들이 좀 더 알기 쉽게 한국 금융산업의 문제점과 해법에 대해 더 깊숙한 질문을 해보기로 했다.

금융제도 전문가인 서정의 한국은행 국장이 2023년 3월 2일 인터뷰를 갖고 한국 금융산업의 비효율성과 대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김기훈

—한국 금융산업의 문제점을 몇가지 든다면?

“모두 4가지이다.

첫째, 모든 국민들이 금융거래에서 공평하게 대접을 받아야 하는데, 결과를 보면 제도적으로 차별을 받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둘째, 국가가 민간 금융기관과 경쟁하는 비중이 너무 높아 국가 전체적인 차원의 비효율성이 커지고 있다.

셋째, 경제학 원론에도 부합하지 않는 금융제도 개편이 진행되면서 오히려 시장 기능을 저해하고 있다.

넷째, 민간 금융기관의 자율성이 과도하게 억제되고 있다.”

하나씩 물어보기로 했다.

금융산업 문제점 ①

:국민 차별

—국민들이 금융거래에서 차별을 받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한국에서는 금융기관을 ‘제1 금융권’, ‘제2 금융권’ 하는 식으로 분류하는 관행이 있다. 일반 국민들은 마치 우열반처럼 제1 금융권은 우위이고, 제2 금융권은 열등하다고 인식한다. 그리고 많은 국민들이 소위 제2 금융권의 열등한 금융기관으로부터 고금리 대출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 방치되고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보면 금융계에 이런 구분 기준은 없다. 은행 신규 설립이 틀어막힌 상황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희한한 현상일 뿐이다.”

보험업은 은행업과 함께 중요한 금융업종이지만, 한국에서는 '제2 금융권'으로 분류되면서 열등한 금융기관으로 인식되는 불이익을 받고 있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에 위치한 KDB생명 본사./KDB생명

—은행이 제1 금융권, 보험회사 등이 제2 금융권 아닌가?

“교과서에서 정형화된 공식적인 개념이 아니다 보니 사람마다 이야기하는 기준이 다르다. 그래서 혼란스럽고 헷갈린다. 은행을 제외하고 예금이나 대출을 취급하는 곳을 제2 금융권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헷갈리는 용어를 쓰면서 무의식적으로 우등 금융기관과 열등 금융기관을 구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유럽의 차이

—미국이나 유럽은 어떤가?

“미국은 크게 은행, 투자은행, 보험회사로 나눈다. 유럽은 더 단순해 은행과 보험회사로 나눈다. 앞에서 이야기한 3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금융기관은 모두 은행으로 구분한다. 그 밖에 수많은 자산운용회사 등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들은 금융중개 기능을 수행하지 않기 때문에 논외로 할 수 있다.”

미국의 은행들은 규모가 크든 작든 은행의 권한만 갖고 있으면 모두 은행으로 취급된다. 사진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롯에 위치한 뱅크 오브 아메리카 본부./위키피디아

—우리나라의 분류와 어떤 실질적 차이가 있는지 잘 이해가 안된다.

“우리는 제1 금융권, 제2 금융권으로 우열반을 나눠서 국민들을 제도적으로 차별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다. 우리나라 은행에 가보면 예금은 모든 사람이 할 수 있지만, 대출은 신용도가 높은 우량 고객만 받을 수 있다.

반면, 미국이나 유럽 국가에서는 신용도가 떨어지는 사람도, 다소간 높은 대출금리를 부담해야 하겠지만, 소형은행 등을 통해 대출을 받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은행의 우량한 대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은행이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으니, 절반 가까운 국민들이 은행에서 대출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다른 열등한 금융기관으로 밀려나야 한다.”

은행 많아지면 과점 폐해 해결된다

—해법은?

“은행의 설립 기준을 투명하게 만들고 그 기준에 맞으면 허가를 내줘야 한다. 미국이나 유럽은 모두 이렇게 한다. 그래서 은행이 각각 1만개 내외에 달한다. 우리 정부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절반 가까운 국민들을 열등한 금융기관으로 내모는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한국은 매우 제한된 금융회사에만 은행업 허가를 내주기 때문에 은행이 아닌 금융회사들이 열등한 금융기관으로 취급 받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사진은 금융업 허가권을 쥐고 있는 금융위원회의 정부 세종대로 청사 사무실./조선일보 DB

서 국장이 말을 이어갔다.

“2016년 가계금융복지 조사를 보면 2만여 개 표본 가구 중 대출이 은행 밖에 없다고 답한 비율은 30%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은행과 신용협동기구(새마을금고, 신용협동조합, 지역단위조합)에서만 대출을 받았다고 응답한 가구의 비율 역시 50%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절반 정도는 은행이나 신용협동기구를 제외한 다른 금융기관의 고금리 대출을 받았다는 뜻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은행 설립 자유화를 공약으로 내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재벌의 은행업 진출 우려는?

—은행 설립을 자유화할 경우 기업들이 너도 나도 은행업에 뛰어들어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가 될 수도 있지 않나?

“정부가 30년 이상 신규 은행의 설립을 허가하지 않다가 2015년 11월에 KT에게 케이뱅크, 카카오에게 카카오뱅크의 설립을 허가했다. 정부가 기업에게 은행업을 하도록 허가한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기업이 은행을 소유하도록 장려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 이 또한 희한한 일이다. 재벌의 은행 사금고화를 우려한다면서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2015년 11월 임종룡 당시 금융위원장은 금융혁신을 하겠다면서 인터넷 기업들에게 인터넷은행 2곳을 허가했다. 2017년 4월 한 행사에서 강연하는 모습/뉴스1

—산업자본의 은행 진출 금지, 즉 금산분리 원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일부 사람들이 철 지난 금산분리를 철폐하고 기업들이 은행을 하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은 굳건하게 금산분리를 유지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금산분리는 없지만, 이는 유럽의 고유한 특성에 기인한 것이다.”

—어떤 특성인가?

“유럽의 경우 오랫동안 자리 잡은 상업자본주의를 바탕으로 뒤이어 산업자본주의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은행이 기업경영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는 형태로 은행과 기업간의 관계가 발전되어 왔다. 기업이 은행을 소유할 수는 있지만, 한다고 하더라도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경쟁력 높은 기존의 대형 은행들을 상대로 경쟁하면서 수익을 확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유럽 기업들은 비즈니스 측면에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은행을 소유하려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다. 결국 유럽에서는 제도적인 금산분리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자연스럽게 금산분리가 유지되고 있다.”

은행의 사금고화 막는 방법

—하지만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기업이 은행을 소유할 가능성이 높지 않나?

“은행이 재벌들의 사금고가 되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 그러러면 지금 있는 은행의 소유구조, 즉 기업들의 은행 진입을 제한하는 규정을 그대로 유지하면 된다.

은행의 대주주 요건을 정부가 엄격히 조사하고 심사해 우회 진출을 막아야 한다. 인터넷 은행 사례처럼 이런 금산분리 규정까지 어기면서 기업에 은행을 허용해 주는 것은 원칙에도 맞지 않고 전혀 바람직하지도 않다.”

은행 설립 자유화는 재벌이 은행을 소유해 사금고로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러한 여론의 우려 때문에 한국의 대표 기업인 삼성그룹도 보험사와 카드사 등은 갖고 있으나, 아직 은행은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 게양대에서 삼성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뉴스1

—기업이 은행을 하면 왜 문제가 되나?

“은행과 기업은 경영을 잘못하면 누구든지 망할 수 있다. 이 둘이 합쳐진 상황에서 망가지면 국가경제에 더 큰 충격이 올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부작용이 많을 수밖에 없는 기업의 은행 소유를 통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은행산업 내부의 경쟁을 촉진하고 일반 국민의 금융비용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은행 내부 경쟁 촉진해야

—어떻게?

“미국이나 유럽처럼 소형 은행들이 많이 생겨날 수 있는 제도적 여건만 구축하면 된다. 훨씬 효율적이고 단순한 길이 있는데 굳이 인터넷 기업, 핀테크 기업 등을 끌어들여 금산분리 원칙까지 무너뜨릴 이유가 하나도 없다.”

재벌의 은행 소유를 막으면서도 은행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금산분리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미국이나 유럽처럼 소규모 은행들을 많이 허용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사진은 세계 금융 중심지인 런던 시티 지역./G J 마쉬(2020년 10월 26일, 위키피디아)

—그래도 은행의 신규 설립을 자유화하면 규정을 피해 우회 설립하려는 기업들이 생길 수 있지 않나?

“정부가 지금 갖고 있는 금산분리 규제만 유지해도 기업이 은행을 소유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금융감독을 통해서 사후적으로 점검하는 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기업들이 우회적으로 은행을 소유하는 것이 두려워 은행 설립 자유화를 회피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국가 경제 전체가 누릴 수 있는 더 큰 혜택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인터넷 은행 허가

—정부의 인터넷 은행 허가에 대해 비판적인 것 같다.

“부정적으로 본다. 왜 인터넷 기업에게만 은행 소유라는 특혜를 주어야 하나? 논리적으로나 다른 나라의 경험 사례를 보더라도 전혀 타당한 일이 아니다. 그냥 금산분리 원칙만 더욱 허물게 될 뿐이다.

미국에 구글 은행이 있나, 아마존 은행이 있나? 만약 진짜로 구글이나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우리나라에 와서 은행업을 하겠다고 하면 무슨 명분으로 이들을 막을 수 있겠는가?”

정부가 2015년에 인터넷기업에 은행을 허용한 것은 정부가 금산분리의 원칙을 어겨가면서까지 기업의 은행 소유를 허용한 나쁜 사례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사진은 연설하는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뉴스1

인터넷 은행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인터넷 은행과 핀테크에 대해 좀 더 깊이 들어가 보기로 했다.

—금융제도 측면에서 봤을 때 인터넷 은행이 큰 혁신인가?

“우리나라에서는 금융혁신인 것처럼 선전했지만, 미국과 유럽에서는 1980년대, 1990년대 이후 이미 많았다. 그런데 잘 안됐다. 일반 은행에 비해 높은 수익성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달라.

“처음에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이 생겼으니 점포를 안만들어도 되고 운용인력이 적어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은행의 재무건전성 규제는 모두 받았다.

그런데 수익성이 낮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높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인터넷 전문기업이 은행을 하면 금융혁신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해 은행 허가를 내 준 것이다.”

핀테크는 큰 혁신 아니다

—한 때 핀테크(금융+IT)가 각광을 받았는데.

“핀테크를 금융업무에 도입한다고 할 때 어느 한 은행이 그 핀테크를 독점적으로 효율성 있게 쓰기는 어렵다. 핀테크는 모든 은행들이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일 뿐이다. 금융제도 혁신의 차원에서 다뤄질 문제는 아니다.”

핀테크 기술은 기존의 금융회사들이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이기 때문에 금융 혁신을 위해 인터넷 기업에 은행을 허용한 것은 단견이라고 금융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사진은 인터넷 은행인 케이뱅크의 서울 중구 을지로 사옥./케이뱅크

—은행의 지급결제 업무를 핀테크 기업에게도 제한적으로 허용할 필요가 있다는 논의가 최근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한 논의는 문제의 본질을 흐릴 뿐 당면한 은행 과점이익 해소에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다. 지급결제 업무만을 취급하는 특화은행이 생긴다고 해서 이들이 대형은행과 경쟁해 예대금리차를 축소하고 국민의 금융비용 부담을 줄이는데 무슨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서 국장이 말을 이어 나갔다.

“핀테크가 은행 업무에 정말 필수적이라면 기존 은행, 그리고 새로 생기는 신설 은행 등을 대상으로 일정한 수수료를 받고 서비스를 제공하면 그만이지, 굳이 이들 기업이 은행을 소유해야 할 이유는 하등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도 은행의 지급결제 서비스는 충분히 이뤄지고 있고, 일반 국민들이 이용하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다.

중요한 것은 은행산업 내부의 경쟁환경 조성이다. 아무리 특화은행이라고 하더라도 금산분리 원칙을 추가적으로 허물면서까지 일부 기업의 은행 소유를 부추기는 따위의 일이 중요한 과제는 아니다.”

금융개혁이 실현 안된 이유

서 국장이 은행 설립 자유화라는 해법과 동시에 재벌의 사금고화라는 부작용에 대한 대응책도 설명했다. 그의 해법이 한층 설득력이 있게 느껴졌다. 그런데 갑자기 의문이 생겼다. 금융개혁은 오래된 정책 과제였다. 그런데 왜 그동안 은행 설립 자유화가 실현되지 않았을까? 직사포를 쏘아봤다.

금융개혁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은행 과점 체제 해체와 같은 본질적인 개혁 주제는 한 동안 공론화되지 않았다. 사진은 금융위원회가 지난 3월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개최한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실무작업반 제2차 회의./금융위원회

—오랫 동안 금융개혁 논의가 있었는데, 은행 설립 자유화는 왜 아직 실현이 안됐나?

서 국장이 좀 곤란한 듯 잠시 주저하더니 입을 열었다.

“오해가 있는 듯한데, 지난 20여년간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금융개혁 논의는 사실상 실종상태였다. 어쨌든 질문에 대해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우리 금융산업을 설계하고 운영하는데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현행 체제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관행이 강하다. 만약 기존 체제를 허물고 새로운 체제를 도입해야 한다면, 이는 기존 체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반드시 인정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어떤 금융 관료가 그간 잘못했으니까 그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해 새로운 체제를 설계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겠는가?

사실 금융 관료들 입장에서는 이번에 대통령이 말해서 이슈가 되기 전에는 평온한 상태가 유지됐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수많은 금융기관들을 힘 있는 사람들의 노후보장 수단으로 활용해온 측면도 있다.”

금융 개혁 가로 막는 기득권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금융 관료들 가운데 장관과 차관을 지냈던 사람들은 퇴임 후 은행장이나 여타 금융기관장으로 간다. 그 아래 사람들은 단계별로 은행연합회 등 금융기관협회의 전무 등으로, 금융감독을 담당하는 사람들도 퇴임 이후 금융회사의 감사 등으로 간다.”

은행의 과점 체제를 비롯해 금융개혁이 더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경제 관료, 금융감독 당국, 금융회사의 기득권 유지 경향이라는 분석이다. 사진은 재무 공무원 출신인 김광수 은행연합회장이 지난 2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당·정 협의회에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뉴시스

—퇴임 후 3년간 연관 업종에 재취업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지 않나?

“아무런 의미가 없다. 로펌 등을 경유하면서 경력을 세탁하면 그만이다. 은행부터 증권회사, 보험회사, 신용카드회사, 상호저축은행 등등 퇴임후 갈 곳이 얼마나 많은가?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는 참 부끄럽지만, 우리 금융산업에서는 그런 기득권 체인이 여전히 유효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역시 정말 다른 나라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희한한 현상이다.”

—관료나 감독 당국자들만 그런가?

“교수나 관변 연구단체 지식인들 또한 금융기관 사외이사 등을 통해 이러한 체인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같이 기존 체제를 비판하기보다는 유지 내지 옹호해야 할 유인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 지경에도 금융감독 당국 등은 툭하면 은행 등의 방만한 경영을 질타한다. 참 이율배반이다.”

국회가 나서야

—어떤 비효율이 발생하나?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은행 과점 체제가 유지되면서 수많은 금융소비자들이 은행이나 다른 금융기관과 거래하는 과정에서 지출하지 않아도 되는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이 비용들이 은행 등 금융기관 직원들의 고액 성과급, 외국인 주주들의 배당 등으로 나가기도 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돌고 돌아 외부 유입 인사들의 노후대책 자금에도 들어가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은행의 과점화로 이익을 얻는 퇴직 관료들은 현행 과점 체제의 개혁을 원치 않는 경향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사진은 경제 관료 출신의 이석준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지난 2월 17일 서울 중구 소재 농협금융 본사에서 열린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NH농협금융지주

—이런 문제를 개혁하려면 누가 주축이 되어야 하나?

“은행 산업 내부의 경쟁환경을 높이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려면 국회가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본다. 기존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한 금융 관료들 위주로 논의가 이뤄진다면 그 한계는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금융소비자의 이익과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한다는 차원에서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국회가 나서야 한다.”

서 국장은 여기까지 말한 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금융산업 문제점 ②

:국가가 민간과 경쟁

—우리나라 은행산업의 두번째 문제점은?

“국가가 민간 금융기관과 경쟁하고 있는 비중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이다.”

—무슨 뜻인가?

“미국이나 유럽은 국가가 세금을 이용해서 어떤 사업을 하고 싶어도 민간이 이미 그 사업을 하고 있으면 잘 들어가지 않는다. 금융업무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금융기관이 도산위기에 처하면 정부가 세금을 투입해 일시적으로 국유화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최대한 빨리 출구전략을 써서 그 금융기관을 민영화 시킨 뒤에 빠져 나온다. 정부가 그 은행을 오래 소유하면서 다른 은행과 경쟁하는 것은 금기사항이다.”

정부는 불가피한 경우에는 금융산업을 국유화할 수 있지만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민영화 하고 손을 떼야 금융산업의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사진은 한 때 국유화됐던 우리금융지주의 중구 소공로 본점./뉴스1

—구체적인 사례를 들면?

“주택담보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에 가면 은행 직원이 물어본다. 우리 은행의 대출을 받을 것이냐, 아니면 주택금융공사의 보금자리론을 받을 것이냐고. 주택금융공사는 채권을 발행해서 조달한 자금으로 대출을 해 준다. 국가가 개입하는 주택담보대출 상품이 일반 금융기관의 주택담보대출 상품과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상황이다.”

주택금융공사의 문제점

—최근 주택금융공사가 내놓은 특례보금자리론이 큰 인기라고 한다.

“국민의 금융비용을 절감해준다는 명분하에 이런 식으로 국가가 금융에 개입하는 것은 국민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 일이다. 다 똑같은 납세자인데 국가가 자의적인 기준으로 선심 쓰듯이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게 올바르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면 국가는 어떤 일을 해야 하나?

“금융제도 전체의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도록 금융제도를 개편해 시장원리에 따라 은행 등이 경쟁하고, 그에 따라 국민의 금융비용 부담이 줄어들 수 있도록 금융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국민의 금융비용 부담이 크다고 국가가 직접 나서서 저금리 대출을 하는 것은 하지하책(下之下策)이다.”

공공기관인 주택금융공사가 민영 은행 대신 직접 대출에 뛰어드는 것은 금융시스템 전체적으로 볼 때 효율성이 떨어지는 조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은 특례보금자리론이 출시된 지난 1월 30일 서울 중구 한국주택금융공사 서울중부지사에서 한 시민이 상담을 받는 모습./뉴스1

—다른 사례를 든다면?

“앞에서도 말했듯이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정부가 소유하는 은행이 기업 대출을 둘러싸고 민간 은행과 경쟁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부분적으로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도 하나의 예로 들 수 있다.”

—중진공 업무에 어떤 문제가 있나?

“중진공의 가장 중요한 사업이 사실상 대출이다. 연간 4조~5조원의 대출 재원을 굴리고 있다. 지방에 가보면 이 기관이 기업들을 대상으로 대출을 권유하고 다닌다. 벤처캐피탈에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자금이 많이 들어가고 있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기업에 세금을 감면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처럼 대출을 해주며 민간 금융기관과 경쟁하는 것은 경제 전체적으로 볼 때 효율성이 떨어지고 금융비용 부담이 높아진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사진은 대출 업무를 많이 하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경상남도 진주시 본사 건물./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중소기업, 벤처기업을 진흥하는 것은 정부의 중요한 시책 아닌가?

“국민 세금을 고위험 고수익 재원으로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일은 민간이 해야 할 일이다. 물론 미국 중소기업청(SBIC)이나 이스라엘 요즈마펀드처럼 벤처캐피탈에 국가가 개입한 사례는 있다. 그러나 이들은 제한된 기간 동안 마중물 역할을 했을 뿐 최대한 빨리 민간 금융기관에게 그 역할을 완전히 이양했다.”

은행 역할 하는 정부

—또 다른 사례가 있다면?

“정부가 대출 형태로 민간 금융기관과 경쟁하는 사례는 굉장히 많다. 저소득층 지원, 자영업자 지원, 중소기업 지원 등등의 명목으로 정부가 저리 대출 사업을 영위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미국 인플레이션방지법(IRA)에서도 나타나는 것처럼 정부는 필요한 경우 세금이나 보조금을 통해 민간 경제활동에 개입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대출은 은행이 하는 것이지, 정부가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정부가 저리 대출을 해주면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지 않나?

“국민 입장에서는 정부에서 저리 대출을 받으나,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나 다 빚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은행 설립을 틀어막아 놓은 상황에서 많은 국민이 막대한 금융비용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다보니, 정부가 거대한 은행 역할까지 맡아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는 셈이다.”

은행 과점화는 경제 전체적으로 볼 때 민간은행들의 역할이 충분하지 못해, 정부가 은행 역할을 하도록 만든다. 사진은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IBK기업은행의 서울 중구 을지로 본점./IBK기업은행

—정부가 은행 역할을 하면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 미국이나 유럽에서 국가와 민간기관이 경쟁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는 민간이 시장원리를 바탕으로 이윤을 추구해야 당연히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하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경제학의 정석이다.

둘째, 민간이 수익을 낼 수 있는 영역에 국가가 들어가서 수익을 낸다는 것은 국가가 민간의 사업 기회를 빼앗는 것이다.”

미국의 주택금융공사

—앞에서 주택금융공사 사례를 들었지만, 미국에도 주택금융공사 같은 기관이 있지 않나?

“미국의 주택금융공사는 우리와 사정이 다르다. 미국은 땅은 넓은데 사람이 적으니 은행의 예금 수취 기반이 약하다. 주택담보대출 수요가 많을 때에는 대출 재원이 부족하다.

그래서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을 해 준 뒤에 그 대출 채권을 주택금융공사에 팔아 넘겨 대출 원금을 빨리 회수한다. 그리고 그 자금을 다시 대출 재원으로 쓴다. 이렇게 함으로써 은행의 재무건전성을 보여주는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을 높게 유지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그래서 주택금융공사를 만들었다.”

한국 주택금융공사의 설립 모델이 된 미국 연방저당권협회의 미국 버지니아주 레스턴 본점 건물. 그러나 한국 주택금융공사와 달리 직접적인 대출 업무는 하지 않는다./하만(2013년 6월 19일, 위키피디아)

—무엇이 문제인가?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와 유럽의 은행들은 인구 밀도가 높아 은행의 예금액이 대출 재원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대출 채권을 주택금융공사에 팔아넘길 이유가 없다. 그러니 주택금융공사가 할 일이 없다.”

—그러면 조직을 잘못 만든 것 아닌가?

“조직을 만들어놨는데 일이 없으니 스스로 일을 만들고 있다. 주택금융공사는 자기가 채권을 발행해 돈을 조달한 뒤에 그 돈으로 은행 창구에서 주택담보대출을 해주라고 위탁하고 있다. 위탁 받은 은행이 대출해준 뒤에 그 대출 채권을 주택금융공사에 넘긴다.

결국 이제는 그냥 주택담보대출 전문기관이다. 은행이 하면 될 일을 주택금융공사가 끼어든 것이다.”

주택연금

—주택금융공사가 운영하고 있는 주택연금은 어떻게 보나?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주택연금 기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주택을 담보로 잡고 연금을 주는 역모기지론은 매우 일반화된 금융상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민간 금융기관이 이 상품을 만들면 되는데, 국가가 그 기회를 빼앗은 것이다.”

주택금융공사가 노후 대비용으로 팔고 있는 주택연금 상품은 가입자에게 유리한 조건이지만, 주택 가격이 앞으로 하락할 경우에는 국민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단점을 안고 있다. 지난 2월 1일 서울 중구 한국주택금융공사 서울중부지사에 주택연금 홍보물이 놓여 있다./연합뉴스

—그래도 주택금융공사가 은행보다 좋은 주택연금 조건을 제시하면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지 않나?

“지금도 사실 은행이 상업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역모기지론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연금을 주고 있다고 봐야 한다. 주택금융공사 입장에서는 그래야 은행들이 역모기지론 취급을 못하도록 막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만약 집값이 추세적으로 하락하면 어떻게 되겠나? 그 때 가서 또 주택연금 지급을 위해 국민 세금을 헐어야 하지 않겠나?”

은행이 역할 하면 재정 부담도 줄어

—해법은?

“결론은 분명하다. 민간 은행들이 자유롭게 은행 산업에 진입하도록 규제를 풀어 진입 문턱을 낮추어야 한다. 그래야 시장 원리에 따라 은행 간의 경쟁환경이 조성되고 많은 국민이 은행 대출에 접근함으로써 금융비용 부담을 줄여나갈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저소득층, 자영업자, 중소기업 등을 도와주고자 정부가 금융에 개입해야 할 필요성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은행 중심의 시스템이 잘 작동하면 길게 보면 정부의 재정도 아낄 수 있을 것 같다.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정부의 재정 건전성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시장 원리에 의한 은행 기능을 활성화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인구고령화가 급속하게 진전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 건강보험, 각종 사회복지 등과 관련해 앞으로 재정지출이 필요한 분야가 얼마나 많겠나? 세금을 늘려도 늘어나는 정부 지출을 감당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산업 내부의 경쟁환경이 조성되면 국민의 금융비용 부담이 줄어들게 되고 정부가 세금을 헐어 민간 금융에 개입할 필요도 줄어든다. 그래서 국가 재정 측면에도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금융산업 문제점 ③

:원칙 없는 금융 개혁

—한국 금융산업의 세번째 문제점은?

“금융제도를 개편할 때 최소한 교과서 수준의 원칙은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사례가 있나?

“신용카드를 예로 들어 보자. 우리나라에는 현대카드, 삼성카드처럼 신용카드 전문회사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에는 우리나라 같은 신용카드 전문회사가 거의 없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신용카드는 전부 은행이 발급한다. 신용카드 업무는 기본적으로 은행 업무라는 것이다. 비자나 마스터카드를 신용카드 회사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회사들은 신용카드 회사가 아니라 신용카드 결제망을 관리하는 회사일 뿐이다.”

서 국장이 말을 이어갔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여신전문금융업법을 만들어서 많은 수의 신용카드 전문회사나 할부금융 회사들을 모두 대기업 소유로 만들어 줬다. 사실상 예대업무를 제외하고는 많은 은행 업무들이 이미 스몰 라이선스(세분화한 소규모 은행업 인가) 형태로 인가되어 있는 상황이고, 그 와중에 금산분리 원칙도 상당 부분 허물어져 있는 실정이다.”

카드회사를 별도로 분리시켜 독립적인 금융회사로 허가를 내 준 것은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의 현대카드 본사./현대카드

—어떤 문제가 있나?

“신용카드 전문회사들은 채권을 발행해 대출 자금을 마련한다. 은행 예금보다 자금조달 금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

업무 범위가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수익을 높이기 위해서는 신용카드 시장 점유율을 높여야 하기 때문에 각종 할인 제공, 무이자 할부혜택 제공 등으로 많은 비용이 지출되어야 한다. 그러니 카드론으로 대출을 해줄 때 고금리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카드론을 주로 누가 쓰나?

“고금리 카드론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저소득층이 대부분이다. 결국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무이자 할부 구매 소비, 각종 할인 혜택을 위해 저소득층으로부터 고금리 이자를 받는 셈이다.”

선진국은 카드대출 대신 은행대출

—미국이나 유럽의 상황은?

“미국은 상황이 조금 다르지만, 유럽의 경우 많은 국가들이 은행에 대해 카드론 업무를 아예 취급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은행 대출을 통해 저렴한 자금이 풍부하게 공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한국과 달리 은행들이 신용카드 발급 업무를 겸하도록 하고 있다. 사진은 뉴욕시 맨해튼 차이나타운의 씨티은행 지점./우리스(2005년 7월 1일, 위키피디아)

—대안은?

“신용카드에 대해서도 결론은 동일하다. 애초 신용카드 업무를 은행만이 취급하도록 유지했다면 가장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200년대 초반에 겪었던 신용카드 대란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미 많은 카드회사들이 허가를 받아 영업을 하고 있지 않나?.

“이들을 시장에서 강제로 퇴출시킬 수도 없는 일이다. 역시 중요한 것은 신규 은행의 진입을 자유화하여 많은 국민들이 저렴한 금융비용의 은행 대출을 이용할 수 있도록 금융환경을 조성하는 길뿐이다. 그렇게 되면 시간을 두고 많은 국민들이 신용카드 전문회사의 고금리 카드론에 의존해야 할 필요성이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될 것이다.”

제로페이의 단견

서 국장이 이 대목에서 서울시에서 시행한 ‘제로페이’ 제도에 대해 말을 꺼냈다.

“제로페이 제도는 신용카드 회사가 자영업자에게서 받는 카드 수수료가 높으니 서울시가 개입해서 수수료를 아예 없애는 것이다.

한마디로 촌극이다. 세상 어느 나라에서 중앙정부 또는 지방정부가 신용카드 수수료가 높다고 세금을 헐어 별도의 결제망을 구축하고 민간 금융기관과 경쟁하는 사례를 찾아 볼 수 있을까?”

—서울시도 고민을 많이 하지 않았겠나?

“자영업자들의 고충이 크다 보니 고육지책으로 도입한 정책이겠지만, 애초에 성과를 기대하기는 힘들고 아까운 세금만 낭비할 가능성이 높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설령 성과가 있어서 제로페이가 활성화된다고 하더라도 일반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소상공인에게 카드 수수료를 받지 않는 서울시의 제로페이 정책은 카드 회사들이 저소득층의 카드대출 금리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게 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사진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2018년 11월 22일 서울 을지로 상가에서 제로페이 가입을 독려하는 모습./조선일보 DB

—왜?

“생각해 보라. 신용카드 수수료 수입이 줄어들 경우 신용카드 회사들이 어디서 그 수익 감소분을 벌충할까? 당연히 카드론 대출금리를 높일 것이다. 돌고 돌아 국민의 전체적인 부담은 전혀 줄지 않는다는 뜻이다.”

규모와 범위의 경제

—시사점은?

“신용카드 회사 사례의 문제점은 우리나라가 금융제도를 개편할 때 교과서 수준의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교과서에서는 금융기관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금융기관들이 ‘규모의 경제’, 그리고 ‘범위의 경제’를 누릴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배려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무슨 뜻인가?

“‘규모의 경제’라는 것은 기업의 덩치가 커질수록 생산단위당 평균비용이 줄어들게 됨을 의미한다. ‘범위의 경제’라는 것은 취급할 수 있는 업무의 범위를 넓힘으로써 기업의 수익 기반을 확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의 은행들은 은행-증권-카드 업무 등을 한 창구 직원이 처리하는 금융겸업화 덕분에 금융비용을 낮추고 있다는 평가다. 사진은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웰스파고 은행 본사./라이머 프라머(2006년 12월 31일, 위키피디아)

—'범위의 경제'를 은행에 적용하면 어떻게 되나?

“은행에서는 은행 직원 한 사람이 대출도 해주고 신용카드 업무도 처리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은행은 별도 회사를 설립하는 데 들어가야 하는 비용과 운용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 수익이 늘어나게 됨은 당연하다.”

—소비자가 받는 혜택은?

“은행이 조달금리가 낮은 예금을 신용카드 대출 재원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훨씬 저렴한 비용(금리)으로 신용카드 대출을 이용할 수 있다. 국가 전체적으로도 금융효율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미국이나 많은 유럽 국가들이 은행만 신용카드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카드회사 허가해 금융비용만 상승

—우리나라는?

“신용카드 전문회사를 별도로 도입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캐피탈이라든지, 여타 여신전문 금융회사로 분류되는 금융기관들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은행이 모든 업무를 취급할 수 있고, 또 그래야 국가 전체적으로도 금융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은행 업무단위를 쪼개고 쪼개서 별도의 금융기관들만 무수히 만들어 대기업들이 이들을 소유하도록 만들었다. 정부가 나서서 금융기관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금융비용 부담만 가중시키고 있는 셈이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카드회사를 별도의 금융기관으로 독립시켜 허가함으로써 정부가 국민들의 금융비용을 더 높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은 삼성카드 본사가 입주해 있는 서울 중구 삼성 본관./조선일보 DB

서 국장이 말을 이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 이들 나라에서는 이러한 업무들을 당연히 은행의 업무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은행이 이들 업무를 직접 취급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은행의 이자수익 비중이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을 들어 은행이 이자장사에 치우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온당치 않다. 사실상 우리나라 은행이 취급할 수 있는 업무가 예대업무밖에 없는데, 이자이익 비중이 높게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금융지주회사의 눈속임

—금융지주 회사들을 보면 금융지주 아래에 은행, 보험, 카드, 캐피탈 등을 모두 갖고 있다. 이것도 ‘범위의 경제’ 혹은 금융겸업화라고 볼 수 있나?

“전혀 아니다. 사실 금융겸업화에 대한 개념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이다. 금융겸업화는 원래 하나의 금융기관이 은행업과 증권업을 동시에 수행해야 할 것인가 아닌가에 관한 문제이다.”

한국의 금융지주회사들은 그룹 내에 은행-보험-증권-카드 등 여러 독립된 금융 계열사들을 거느리고 있으나 이는 금융겸엽화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의 KB금융지주 본사./KB금융지주

—미국은?

“금융지주회사를 통해 은행과 증권회사(투자은행)가 서로 범위의 경제를 누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나마도 글래스-스티걸법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공식적으로 폐기된 이후에나 이뤄졌다. 그 전에는 대공황 이후 은행업과 증권업이 엄격하게 분리되어 운영됐다.”

—유럽은?

“은행이 직접 증권 업무를 취급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른바 유니버설 뱅크(universal bank)이다. 우리나라 은행과 유럽 은행들이 단지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은행으로 보는 것은 큰 오산이다. 유럽 은행들이 취급하는 업무 범위는 우리나라 은행이 취급하는 업무 범위보다 훨씬 넓다.”

미국 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은행이 카드 발급 등 다른 여러 금융업무를 겸하는 금융겸업화가 일반화되어 있다. 사진은 독일의 대표적인 은행인 도이체방크의 프랑크푸르트 쌍둥이 빌딩./토마스 울프(2013년 7월 8일, 위키피디아)

—한국은?

“미국의 금융지주회사 틀만 벤치마킹 했을 뿐 사실상 은행의 금융겸업화를 전혀 지원하지 않고 있다. 신용카드 업무, 캐피탈 업무 등등 원래 은행의 업무까지 쪼개어 별도의 전문회사를 만들도록 하고 있는 판에 은행업과 증권업의 겸영 등을 통한 시너지 효과 창출 등에 대해서는 이야기도 꺼내기 어렵다.

단지 금융지주회사 안에 여러 금융기관들을 자회사로 편입시켰다고 해서 문슨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한 사람이 여러 업무를 동시에 하면서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금융겸업화의 목적인데, 한 지붕 아래라 하더라도 어차피 독립적인 여러 금융기관들이 별도로 영업을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효율성이 높아지겠나? 인건비 절약 등을 통한 비용절감조치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로 인해 파생되는 비용은 결국 일반 국민들에게 전가될 뿐이다.”

한국 금융산업의 4가지 문제점 중 3가지에 대한 대화가 끝났다. 4번째 문제점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 ①/③ 편 보기

☞ ③/③ 편으로 이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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