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걍 싸우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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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11.28. 오후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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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줌마]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20년 전 미국 뉴욕에서 9·11테러가 터진 지 보름여 만에, 기자인 그는 파키스탄으로 날아갔습니다.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와 탈레반 정권 축출을 위해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전쟁을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전쟁 중인 아프가니스탄 진입은 통제돼 한국을 비롯한 각국 취재진은 인접국인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로 몰려들었습니다. 섭씨 40~50도 더위, 세균성 설사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국경도시 페샤와르와 난민촌을 르포하고, 현지 브로커와 함께 무기 거래가 이뤄지는 암시장도 취재했다고 하지요. 통신 상황이 열악해 사나흘에 한 번 한국의 가족들과 통화하는 3분이 너무 서글펐답니다. 그는 돌이 갓 지난 아기를 둔 아빠였습니다.

특파된 지 40일 만에 새로 파견된 기자와 바통터치를 하고 한국에 돌아온 그는 얼마 후 충격적인 비보를 듣습니다. 로이터통신 기자 등 현지에서 친하게 지냈던 서방 기자들이 차를 빌려 아프간 국경을 넘어 들어갔다가 무장괴한들의 총격에 모두 사망했다는 뉴스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거기 남아 있었다면 그들과 함께 차에 타고 있었을 거라며 무척 비통해하더군요.

영화 ‘모가디슈’를 보다 이제 반백의 중년이 됐을 그의 아프간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내전이 일어난 영화 속 소말리아 상황이 현재 아프간 상황과 흡사하지 않을까, 아니 다시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간의 현재는 영화보다 몇십 배, 몇백 배 지옥일 거라 생각하니 무서웠습니다. 특히 아프간의 엄마들이 아기만이라도 살려달라며 철책 너머 미군들에게 아이를 던지는 장면은 고통스럽더군요.

뉴스를 함께 보던 중학생 딸에게 물었습니다. “이곳이 아프간이라면 우린 어떤 선택을 할까. 일단 너희부터 탈출시켜야겠지?” 시큰둥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하던 아이가 포도 씨를 퉤 뱉더니 말합니다. “싫어. 왜 내가 남의 나라에 가서 살아? 걍 싸우면 안돼? 총 쏘는 법 배워서?” 북한군도 무서워하는 중2라더니, 탈레반도 울고 갈 중1입니다.

이래저래 흥행몰이 중인 영화 ‘모가디슈’엔 아쉬운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생지옥이 된 모가디슈를 탈출하기 위해 남북 대사관 직원들이 함께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피신할 때 ‘백기’를 드는 장면입니다. 영화 속 실제 주인공인 강신성 전 주(駐)소말리아 대사는 “그때 우리는 남북한 할 것 없이 태극기를 흔들며 필사적으로 구원을 요청했는데 영화에선 왜 백기로 바꾼 건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영화 제작자들이 북한을 배려한 결과일까요? 팩트를 바꾸면서까지 굳이 그럴 필요 있었을까,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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