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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남 실화는 더 영화같았다…"K씨, 머리 밀고 中갱과 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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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수리남’에서 국정원 작전에 투입된 민간인 사업가 강인구 역할을 맡은 하정우.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머나먼 수리남까지 온 그는 마약 대부 전요환(황정민)이 이끄는 한인 교회에서 수상한 정황을 포착한다. [사진 넷플릭스]

‘수리남’에서 국정원 작전에 투입된 민간인 사업가 강인구 역할을 맡은 하정우.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머나먼 수리남까지 온 그는 마약 대부 전요환(황정민)이 이끄는 한인 교회에서 수상한 정황을 포착한다. [사진 넷플릭스]

“니 새끼 생각은 안 할래? 적어도 니 새끼는 남한테 아수운 소리 안 하고 폼나게 살아야 된다 아이가.”
2012년 개봉한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에 나오는 최익현(최민식)의 대사지만, 9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의 강인구(하정우)의 입에서 나온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두 사람 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아내와 자식은 물론 남은 동생들까지 책임져야 하는 어깨가 무거운 ‘K가장’이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지극히 보편적인 정서지만 이를 적절히 버무리면서, 콜롬비아ㆍ멕시코 마약 카르텔 이야기를 그린 ‘나르코스’ 등 기존 넷플릭스 마약물과 차별화를 꾀하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공개 5일 만에 스트리밍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에서 TV쇼 부문 전 세계 3위에 오르는 등 인기몰이 중이다.

넷플릭스서 첫 시리즈 도전 윤종빈 감독 #'범죄와의 전쟁'과 또 다른 아버지 이야기

“니 새끼 생각은 안 할래” K가장 무게감

15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윤종빈(43) 감독은 “실화가 가지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수리남’은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 수리남에서 마약 밀매조직을 운영했던 조봉행과 그를 잡기 위한 국정원 작전에 투입된 민간인 K씨의 실화에서 출발했다. 제작사(퍼펙트스톰필름)로부터 녹취록을 건네받은 윤 감독은 K씨를 세 차례 만나면서 강인구라는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당초 ‘군도: 민란의 시대’(2014)를 마치고 배우 하정우로부터 영화 연출 제안을 받았던 그는 “‘범죄와의 전쟁’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이유로 거절했으나 ‘공작’(2018) 이후 다시 한번 제안을 받으면서 마음을 굳혔다. 방대한 이야기를 두 시간짜리 영화에 담기는 어렵겠다고 판단해 시리즈로 노선을 바꿨다. tvN과 10부작 드라마도 논의했으나 넷플릭스로 가면서 6부작이 됐다.

‘수리남’으로 처음 드라마 연출에 도전한 윤종빈 감독. [사진 넷플릭스]

‘수리남’으로 처음 드라마 연출에 도전한 윤종빈 감독. [사진 넷플릭스]

“제 기준으로는 평범한 민간인이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국정원 작전에 투입됐다는 게 가장 납득이 안 됐어요. 대체 어떻게 살아왔으면 그럴 수 있을까 싶었는데 K씨를 만나보니 바로 알겠더라고요. 특수부대 출신처럼 강인한 외모에 강한 정신의 소유자이기도 하고, 어린 동생들 대학 보내고 시집 장가보내며 평생을 책임감으로 살아온 분이었어요.” 그는 “오히려 너무 영화적이어서 뺀 에피소드도 많다”며 “마약 대부 밑으로 들어가기 위해 일부러 머리를 빡빡 밀고 중국 갱들과 싸우고 다녔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너무 ‘디파티드’나 ‘무간도’에서 본 것 같은 클리셰 아니냐"고 덧붙였다. 대신 실제로 수리남에서 홍어 사업을 한 K씨의 이야기에 아버지도 홍어를 좋아했다거나 베트남전 참전 용사 같은 설정을 덧대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강인구 전사 늘어져도 꼭 필요했다”

시리즈 초반 전사를 쌓는 데 공을 들인 것도 그 때문이다. “1~2회가 늘어진다는 얘기는 대본 단계에서부터 많이 나왔어요. 불필요할 수도 있는 전사를 덕지덕지 넣은 이유는 조금 처지더라도 그래야 강인구라는 인물의 행동을 납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깡패에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돈 깎으려고 협상을 하는 사람이니까 끝까지 임무를 수행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선수금은 받았고, 잔금이라는 동력이 있으니까요.”
 반면 마약 대부이자 한인 목사로 분한 전요환(황정민)의 이야기는 충분한 것 같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처음엔 사이비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았는데 읽을 때마다 재미가 없어서 빼 버렸다. 촬영까지 했는데 뺀 장면도 많다”고 밝혔다. “평소 미드를 볼 때도 서브플롯에는 관심이 없어서 다 스킵하는 편이거든요. 아무래도 제가 지루한 걸 못 참는 사람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윤종빈 감독은 “애초에 이 이야기를 마약물로 보진 않았다”며 “평범한 민간인이 조직에 잠입하는 언더커버물인데 상대해야 하는 악당이 마약상인 것”이라고 말했다. ‘수리남’에서 마약 거래를 준비하는 장면. [사진 넷플릭스]

윤종빈 감독은 “애초에 이 이야기를 마약물로 보진 않았다”며 “평범한 민간인이 조직에 잠입하는 언더커버물인데 상대해야 하는 악당이 마약상인 것”이라고 말했다. ‘수리남’에서 마약 거래를 준비하는 장면. [사진 넷플릭스]

전요환이 이끄는 한인 교회에서 신도들이 기도하고 있는 장면. [사진 넷플릭스]

전요환이 이끄는 한인 교회에서 신도들이 기도하고 있는 장면. [사진 넷플릭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조봉행 사건이나 수리남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2009년 브라질에서 체포돼 2011년 한국에서 징역 10년, 벌금 1억원을 선고받은 조봉행씨는 출소 후 수리남으로 다시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으나 2016년 형집행정지를 받은 이후 사망했다는 후속 보도가 나온다. 수리남 정부는 자국을 마약 국가로 묘사한 것에 대해 제작사에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는 등 관련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윤 감독은 “거기에 대해서는 노코멘트 하겠다”고 밝혔다. “제목은 마지막까지 고민했지만 첫 대사가 ‘수리남이라는 나라를 아는가’여서 다른 제목은 떠오르는 게 없었고, 실화가 있기 때문에 가상의 국가로 설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수리남’의 영어 제목은 ‘나르코-세인츠(Narco-Saintsㆍ마약-성직자)’다.

“만들 때 시즌 2 생각 안 해…닫힌 결말”

실화에서 단서를 얻어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윤 감독의 장기이기도 하다. 장편 영화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2005)는 군대 경험담에서 출발했고, ‘공작’은 대북 공작원 흑금성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범죄와의 전쟁’ 역시 경찰 간부 출신인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개봉 당시 시사회에서 “대학교 1학년 때 돌아가신 아버지와 거의 소통이 없는 부자지간이어서 나이가 들면서 이 사람은 어떻게 살았을까, 집에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닌 밖에서의 모습을 상상하며 시나리오를 썼다”고 밝히기도 했다. “아버지와 추억이 별로 없다 보니 빨리 아버지가 되고 싶다, 좋은 아버지가 돼야겠다는 생각은 있었던 것 같아요. ‘범죄와의 전쟁’과 ‘수리남’은 같은 아버지 이야기지만 정반대예요. 전자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나쁜 짓을 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라면, ‘수리남’은 반대로 아버지이기 때문에 전요환의 유혹적인 제안에도 선을 넘지 않죠.”

2012년 개봉한 윤종빈 감독의 영화 ‘범죄와의 전쟁’. 1980년대 부산을 배경으로 한 조직폭력배와 세관 공무원 출신 로비스트의 이야기로 장르물의 새 지평을 열었다. [사진 CJ ENM]

2012년 개봉한 윤종빈 감독의 영화 ‘범죄와의 전쟁’. 1980년대 부산을 배경으로 한 조직폭력배와 세관 공무원 출신 로비스트의 이야기로 장르물의 새 지평을 열었다. [사진 CJ ENM]

차기작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은 듯했다. ‘수리남’으로 시리즈에 처음 도전한 그는 “코로나19로 해외 로케이션 장소 헌팅도 난관이었지만 리허설할 시간도 없이 촬영할 만큼 제작 일정이 빠듯해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시즌 2 제작 가능성에 대해서는 “닫힌 결말이기도 하고 촬영할 때는 그런 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찍었다”며 “‘수리남’이 4년 걸렸는데 시즌 2까지 하면 8년이나 내 인생을 바쳐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답했다. “개인적으로 장르물보다는 미니멀한 영화를 좋아하고 좀 더 사람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할 때면 제작사 반응이 시큰둥하더라고요. OTT가 다양해지면서 관객들이 극장에서 보고 싶어하는 건 좀 더 스펙타클한 영화가 된 것 같기도 하고…완전 판타지나 SF처럼 전혀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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