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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 어렵게 붙고도 사표 던지는 2030…그 사연 봤더니

고보현,박나은 기자
고보현,박나은 기자
입력 : 
2022-03-02 17:18:57
수정 : 
2022-03-03 07: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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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도 일시키지, 애인 있나 캐묻지, 옛날 방식만 고집하지…

젊은 공무원 이직행렬 왜…
넥스트리서치 설문조사

◆ 어쩌다 회사원 / 직장인 A to Z ◆

사진설명
2년 차 지방직 공무원 김 모씨(27)는 최근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공무원이 됐지만 경직된 조직문화와 업무량에 비해 적은 급여에 대한 불만이 커졌기 때문이다. 김씨는 "야근이 잦고 민원인을 대할 때도 스트레스가 너무 크다"며 "퇴근 후에도 잡무를 시키고 사적인 질문을 하는 등 조직 내부 문화도 감당하기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사기업에 다니는 주변 친구들이 연봉과 성과급을 얘기할 때도 '여기서 왜 이렇게까지 고생하고 있나' 싶다"며 이직에 관한 고민을 털어놨다. 최근 들어 젊은 MZ세대 공무원 퇴사가 늘고 있다. 국가공무원 경쟁률은 매년 오르지만 동시에 20·30대와 저연차 공무원 퇴직자 비율도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연금공단에 따르면 2020년 18~35세 공무원 가운데 5961명이 퇴직했다. 이는 2017년 4375명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특히 5년 이하 재직 중 퇴직한 공무원도 2020년 9968명으로 전체 4만7319명 가운데 21%를 차지했다. 2017년에는 5613명으로 전체 퇴직자 3만7059명의 15% 수준인 것에 비하면 이 비율도 커졌다. 이 같은 MZ세대 공무원 퇴직이 늘고 있는 데는 공직 사회의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조직문화가 주요한 영향을 끼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여론조사 업체 넥스트리서치가 발표한 '조직문화력 측정을 위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공직 사회 직원은 모든 분야에서 대기업 직원보다 강한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직문화를 개선해온 민간 기업도 아직은 갈 길이 먼 것으로 조사됐다.

설문조사는 넥스트리서치가 리멤버(명함 관리 애플리케이션) 서베이를 통해 지난 1월 5~20일 직장인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경찰청 등 공공기관 19곳에서 총 380명이 참여했고, 민간 기업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KT 등 14곳에서 420명이 조사에 응했다. 설문 참여자는 과장급 이하가 56.9%로 절반 이상이 젊은 층이다. 설문 내용은 △갑질력 △꼰대력 △자율성 △포용성 △공정성 △혁신성 △자기통제성 등 7개 항목으로 나눠 직장 조직문화의 건전성을 측정했다. 항목 중 갑질력과 꼰대력은 역추적해 산출했으며, 모든 항목은 점수가 높을수록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 공무원 10명 중 4명 "말 안 통하는 상사 있다"
사진설명
근무 시간 외 업무 지시, 과잉 의전, 폭언·폭행 등 직장 내 갑질을 묻는 항목에서는 민간 부문이 67.2점을 기록한 반면, 공공 부문은 그보다 낮은 59점을 기록해 부정적 답변이 많았다. 업무 시간이 아닐 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전화, 문자 등으로 지시를 받은 적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공공 부문 직원의 절반에 가까운 42.9%가 "그런 경험이 있다"고 답해 눈길을 끌었다. 민간 기업의 경우 "불필요한 업무 연락을 받았다"는 응답이 26.7%를 차지했다. 정부 부처 산하기관에 근무하는 박 모씨(26)는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도 상사에게 업무 지시를 받아 급하게 처리한 적이 종종 있다"며 "회사가 직원 개개인의 사생활을 조금만 더 존중해줬으면 한다"고 털어놨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사가 있느냐'는 문항에는 공무원 10명 중 4명(41.3%)이 "그렇다"고 답했다. 특히 과거의 경험만을 중시하고 주변 의견에는 귀를 닫는 '꼰대 상사'가 많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직장 상사에게 사생활에 대한 질문을 받거나 업무에 불필요한 고집을 부리는 관리자가 많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부 부처 공무원으로 재직 중인 이 모씨(28)는 "내가 후배라는 것을 아는 순간 바로 반말부터 하는 사람이 태반"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 광역시 소속 공무원 김 모씨(25)는 "'연애하는 상대가 있느냐'는 질문은 사무실 내 모든 직원에게 받았다"며 "말을 붙이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기기는 하지만, 질문을 받는 입장에서는 불쾌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일부 직급자가 과거 시절과 비교해 가며 '요즘 젊은 직원들은 정말 편하게 일한다'고 눈치를 주는 일도 많다고 덧붙였다.

◆ 저녁 있는 삶? 공무원 절반 이상이 "번아웃 경험"
공무원이라면 업무 강도가 낮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지켜지는 삶을 살 것이라는 인식도 사실과 달랐다. 공공 부문 직원 절반 이상(52.1%)은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로 번아웃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한 조직인지 평가해달라는 문항에 공무원 10명 중 4명만이 "가능하다"고 답했으며, 민간 기업 직장인은 10명 중 6명이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공공기관에서는 업무에 대한 자율성이 낮은 까닭에 자신이 적극적인 주도권을 가지지 못하는 분위기인 경우도 많다. 올해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최 모씨(25)는 "다수 공무원은 태생적으로 자율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대부분의 일이 반드시 원칙에 근거해 진행되고, 자신의 재량을 발휘하기 힘든 구조"라고 평가했다. 그는 "기껏해야 일의 순서를 틀리지 않거나 오류가 없도록 효율성을 높이는 노력 말고는 자율성을 발휘하기 힘든 환경"이라고 덧붙였다.

이직에 대한 고민도 공무원이 더 많이 하고 있었다. 민간 기업 직원이 공무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만족도는 높았다. '많은 업무량과 높은 업무 난도 때문에 이직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공공 부문(36.6%)이 민간 부문(30%)보다 6.6%포인트 높았다.

유연성이 높고 변화에 민감한 대기업의 경우 조직문화가 최근 수평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았다. SK 계열사에 다니는 1992년생 정 모씨(30)는 "서로서로 꼰대가 아닌지 눈치 보고 조심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귀띔했다. 포스코 계열사에서 근무하는 이 모씨(25)는 "회사에서 다른 건 몰라도 정시 퇴근이나 연차 사용은 자유로운 편"이라며 "(실무자를 존중하는 분위기와 관련해) 내 의견이 현실적으로 반영되지 않더라도 최대한 의견을 들어주려고 노력한다"고 전했다.

◆ 상명하복보다는 소속감 느끼게 해줘야
공직 사회도 민간 기업처럼 조직문화 변화를 위한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권위적인 조직문화에서 탈피하고 2030세대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공감대 형성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7월 인사혁신처가 발표한 '조직문화 바꾸기 10대 프로젝트'다. 인사처는 MZ세대 구성원 비중이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해당 연령대 직원들은 조사 결과 '상사 눈치를 보는 야근은 그만하게 해달라' '관리자와는 밥 먹는 것도 일'이라는 의견을 비롯해 '휴가를 쓰려고 하면 과장님이 사유를 물어본다' '결론이 이미 정해진 답정너 회의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를 냈다. 인사처는 이 같은 의견을 수렴해 △눈치 야근은 그만하게 △식사는 자유롭게 △회식은 건전하게 △회의는 똑똑하게 △보고는 간결하게 등 10가지 과제를 선정하고 실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설문조사를 수행한 맹진우 넥스트리서치 본부장은 "공직 사회가 민간 기업보다 소위 '꼰대 문화'가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사실 민간 기업도 문제가 많다는 것이 조사에서 나타났다"며 "상명하복의 압박보다는 소속감을 더 느끼게 해주고 직장에서 일에 대한 의미를 찾아주는 등 끊임없이 문화를 바꿔나가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고보현 기자 / 박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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